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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트 오브 킬링 (The Act of Killing , 2013) 이렇게까지 감독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다큐멘터리는 처음 본다. 인도네시아라면 자카르타와 발리 외에는 딱히 아는 것도 없었는데, 한국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청산이 제대로 안 된 것부터 과거의 비극까지 여러 모로 닮은 점이 많다. 10년 가까이 타지에 머물면서 다큐를 찍었다는 게 대단하다. 한국에서 이와 같은 다큐가 나왔다면 과연 어떤 반응이었을까. 더보기
벌새 (House of Hummingbird, 2018) 친구가 통신사 포인트가 남는다고 영화 볼 생각이 있으면 보라고 했다. 이번달 말에는 볼까 했던 '벌새'를 예매했다. 좋다는 평이 많은데, 실망할까봐 최대한 기대를 안 했다. 비가 유난히도 많이 왔고, 장우산을 극장에 두고 갈까봐 걱정했다. 좌석 밑에 장우산을 둔 채, 영화에 대한 기대보다 우산 분실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마감 때문에 보는 영화는 대부분 예전영화라서 집에서 스트리밍서비스로 본다. 극장에 가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극장에 가는 일이 줄어든다는 건 아이러니 하다. 극장 가는 길에 본 심보선 시인의 에세이에는 벌새를 언급한 대목이 있었다. 좋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벌새'는 올해 본 한국영화 중 가장 마음에 크게 남을 작품이다. 김새벽이 나올 때는 .. 더보기
월드워Z (World War Z, 2013) '월드워Z'는 새로운 지점이 많은 좀비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좀비영화에게 바라는 지점들은 잘 섞은 영화다. 영화가 제시한 해결책은 흥미로운 은유로 느껴졌다. 예루살람의 장벽과 난민수용소 등의 이미지도 좀비에 대한 저절한 은유로 보였다. 애초에 기획할 때부터 후속작을 염두해뒀다는데, 찾아보니 결국 후속편은 무산됐다. 브래드 피트는 이제 아버지 역할로 등장할 때가 더 많다. 배우보다 프로듀서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는 인터뷰도 나왔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봐도 배우 브래드 피트는 반갑지만, 제작자 브래드 피트가 참여한 작품의 목록은 더욱 쟁쟁하다. 이왕이면 그가 배우와 프로듀서 두 가지 모두 열심히 해주면 좋겠다. 더보기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2011) '트리 오브 라이프'는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관객의 호불호 이전에 영화에 참여한 스텝과 배우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듯 하다. 좋게 말하면 완벽주의자일지 몰라도 다르게 말하면 자기멋대로인 테렌스 맬릭의 연출스타일 때문에, 배우들은 통편집 당할 위험이 언제나 있고, 스텝들은 원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계속 촬영에 임해야 한다. 엠마누엘 루베즈키가 찍은 촬영분량이 어마어마하고, 그 덕분에 화면은 내내 아름답다. 우주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앞부분의 추상적인 이미지들은 경이롭다는 생각보다 지루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뚜렷한 드라마를 보고 싶었으니까. 오히려 후반부에 잭의 어린시절을 그려내는 부분이 훨씬 인상적이다. 권위적인 아버지랑 대립하던 시절이 떠올라서 그런지, 보면서 힘든 부분도 있었다. .. 더보기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The Assassination Of Jesse James By The Coward Robert Ford , 2006) 영화를 선택할 때 감독과 배우의 이름 만큼이나 중요한 게 있으니 바로 러닝타임이다. 제목도 긴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의 러닝타임은 2시간 40분 가까이 된다. 인내하듯 볼 거라고 예상했으나, 굉장히 흥미로운 서부극이다. 상복 없는 배우라고 하면 브래드 피트가 떠오른다. 좋은 작품을 많이 고르는 그는 이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직접 제작과 주연을 맡았고, 앤드류 도미닉 감독과는 그의 차기작 '킬링 소프틀리'에서도 주연과 제작으로 참여한다. 배우 브래드 피트의 필모그래피가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제작자 브래드 피트의 필모그래피는 배우 브래드 피트 이상으로 훌륭하다. 여러모로 약점이 많다. 나레이션으로 진행하고, 중요한 순간에는 결말을 아무렇지 않게 나레이션으.. 더보기
해피 고 럭키 (Happy-Go-Lucky, 2008) 샐리 호킨스의 우울한 캐릭터들을 주로 보다가 밝은 캐릭터를 보니 신기하다. 코믹연기가 훨씬 힘들다고 생각하기에, 샐리 호킨스의 내공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도 '해피 고 럭키'가 아닐까 싶다. 마이크 리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포피는 감당하기 쉬운 캐릭터는 아니다. 그러나 영화 중반 이후부터 피포가 마냥 밝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면서, 마이크 리의 캐릭터들은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걸 느낀다. 샐리 호킨스뿐만 아니라 자동차 연수 강사로 나오는 에디 마산의 연기도 좋았다. 샐리 호킨스와 에디 마산 둘 다 '베라 드레이크' 속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와는 정반대에 가까운 캐릭터를 보여준다. 부잣집의 얌전한 딸과 베라의 집안에 든든한 사위를 연기하던 둘은 엄청난 에너지의 낙천주의자와 다혈질 캐릭터를 소화.. 더보기
베라 드레이크 (Vera Drake, 2004) 마이크 리의 최고작을 뽑으라고 하면 고민 된다. '세상의 모든 계절', '비밀과 거짓말', '베라 드레이크', 셋 다 훌륭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베라 드레이크'는 좀 더 명확한 소재를 가져왔다. 낙태에 대한 사회적인 토론 외에도, 선의와 사회적 규범이 갈등할 때 어떻게 해결하는 사회가 건강한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만든다. 즉, 영화의 러닝타임보다 훨씬 더 긴 고민을 관객에게 안겨준다. 찾아보니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 대부분 영화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서, 영화 속 반응이 거의 실제반응에 가깝다고 한다. 심지어 주인공인 이멜다 스턴톤조차 자신이 연기한 베라 캐릭터의 끝은 몰랐다고. 마이크 리는 늘 좋은 각본으로 유명하고, 정작 각본은 배우들과 리허설을 통해 만든다. 좋은 이야기가 무엇일지에 대해, 완벽.. 더보기
비밀과 거짓말 (Secrets Et Mensonges, Secrets & Lies, 1996) '네이키드' 다음으로 본 마이크 리의 영화인데, 두 사이에 어떤 기복이 있던건가 싶을 만큼 '비밀과 거짓말'은 좋은 작품이다. 최근에 본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누구나 아는 비밀'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계급을 둘러싼 갈등이 녹아들어있고, 그것을 어떤 집단을 통해서 보여준다. 마이크 리의 즉흥적인 연출은 실내극에서 좀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레슬리 멘빌은 짧은 출연이지만 마이크 리의 거의 모든 작품에 나와서 볼때마다 반갑다. 모든 배우들이 호연을 보여줬는데,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브렌다 블레신이 압도적이지만, 티모시 스폴도 그에 못지 않게 무게감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마리안 장 밥티스트는 이후에 좀 더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않은 게 의아할 만큼 좋았다. 마이크 리 감독의 작품에는 애증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