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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Elephant , 2003) '엘리펀트'가 걸작인가에 대해 토론을 한 평론가들이 떠오른다. '아이다호'와 마찬가지로 몇 년만에 다시 봤다. 강렬한 이미지가 많기 때문에, 특히 후반부의 몇몇 장면들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휘발하지 않는다. 구스 반 산트가 선택한 표현방식은 놀랍지만, '엘리펀트'가 걸작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이런 선택을 한 게 놀랍다. 세상에 콜럼바인 총기 사고로 이런 영화를 만들 사람은 구스 반 산트 뿐일 거다. 코엔 형제의 '시리어스 맨' 마지막 장면에서 휘날리는 깃발을 보면서 '엘리펀트'가 계속 떠올랐다. 딱히 연관성도 없지만 늘 두 영화가 함께 떠오르는 이유는 '시리어스 맨'을 다시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더보기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 , 1991) 거의 10년만에 다시 본 작품이다. 잘못 기억하고 있는 장면들이 많아서, 새로 본 영화나 다름 없다. 희곡 헨리 5세가 원작이라는 걸 과거에는 모르고 봤는데, 원작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다. 구스 반 산트 작품치고는 서사가 꽤 뚜렷한 편이라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제일 좋아하는 배우 중 한 명이 호아킨 피닉스인데, 리버 피닉스와 호아킨 피닉스는 참 다르게 생겼다. 아이다호 지역에 대해서 아는 게 단 하나도 없지만, 훗날 가게 된다면 그건 전적으로 영화 '아이다호' 때문일 거다. 더보기
알라딘 (Aladdin , 2019) 왕십리cgv가 한동안 리뉴얼 공사를 하느라 거의 안 가다가 오랜만에 갔다. 리뉴얼을 하고 나니 확실히 깔끔해졌으나, 너무 오랜만에 가서 이전에 왕십리cgv가 어떘는지 기억이 잘 안 났다. 다음주에 '봉오동전투'를 보러 갈 계획인데, 익숙해지면 최근에 거의 기본값처럼 갔던 용산cgv만큼 익숙해지지 않을까. 4dx를 처음으로 봤다. 아무리 재미 없는 영화도 4dx로 보면 마음 속 점수가 오르겠다 싶을 만큼, 잔잔한 재미가 있다. 의자가 흔들리고, 눈이나 비 효과, 향도 나는 등 잔재미가 흥미로웠다. 2d로 봤을 때랑은 기억 자체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워낙 주변에서 '알라딘'을 4dx로 보라는 말이 많아서 겸사겸사 봤다. 'a whole new world'가 나오면서 양탄자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장면, .. 더보기
누구나 아는 비밀 (Todos lo saben , Everybody Knows , 2018) 아쉬가르 파라디가 스페인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으면 어떻게 될까. 여전히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인물들이 갈등하고, 충돌을 통해 진실이 드러난다. 함부로 답을 내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지는 태도도 여전하다. 칸 영화제나 현재 시사회를 통해 본 이들 중 실망했다는 이들이 많지만, 내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단순한 치정극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내내 계급에 대한 이야기로 보였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인물들은 계급논리에 따라 판단한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와 마찬가지로 배경이 이란에서 스페인으로 바뀌었을 뿐, 계급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물들의 시선은 여전하다. 다만 배경이 스페인으로 옮겨지면서 종교와 관련된 부분은 좀 피상적으로 쓰였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서 코란에 모든 걸 거는 .. 더보기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牯嶺街少年殺人事件 , A Brighter Summer Day , 1991) 남들이 좋다고 해서 본 '하나 그리고 둘'은 봤을 당시에 썩 감동적이진 않았다. 다 좋다는 영화를 나만 안 좋아할 때면 괜히 한번 더 봐야하나 싶다. 이런 식의 자기검열은 좋지 않다. 러닝타임이 긴 영화들을 며칠 내내 보니 제법 영화의 지구력이 올라온 느낌이다. 이렇게 4시간 넘는 작품들만 보다가 한 시간 반짜리 영화를 보면 반가우려나 아쉬우려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도 늘 봐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미룬 작품이다. 장첸은 에드워드 양의 작품으로 데뷔해서, 왕가위와 허우샤오시엔까지 거장들에게 사랑 받는 배우다. 양정이는 이 작품 이후로 미국에서 산다고 하는데 계속 배우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양정이의 존재감이 영화에서도 중요한 장치니까. 영화 중후반에 217파를 습격하는 장면에서 어둠 속에 전투가 펼쳐지.. 더보기
유레카 (ユリイカ , Eureka , 2000) 구로사와 기요시를 좋아하기 떄문에, 아오야마 신지는 그와 언급되는 감독 중 하나다. 다만 그의 작품을 국내에서 보기 힘들기에, 내가 본 그의 첫 영화도 '유레카'다. 4시간 내내 영화가 빙빙 도는 느낌이다. 버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서 생존자로서 겨우 돌아왔지만, 피해자임에도 사람들은 그들을 전염병 환자처럼 피한다. 그들이 무엇인가 해보려 할 때마다 보란듯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돌아갈 곳도 없는 이들이고, 목적지도 없다. '유레카'는 반드시 마지막까지 응시해야 하는 작품이다. 최근에 본 작품까지 통틀어서 이렇게 엔딩에서 큰 감흥을 얻은 작품이 없다. 마지막을 향해 가기 위해 4시간의 러닝타임을 끌고 나갈 감독은 많지 않다. 엔딩만으로도 계속해서 기억하게 될.. 더보기
해피 아워 (ハッピーアワー , Happy Hour , 2015) 5시간의 러닝타임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져서, 소소한 일상을 다룬 영화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일상은 생각보다 잔잔하지 않아서, 러닝타임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앞부분 워크숍 장면과 뒷부분 낭독회 장면은 영화 전체의 메시지인 소통과 관련해서 중요한지라 꽤 길게 응시한다. 영화 제작 과정이 더 흥미롭다. 2013년에 감독이 연기 경력이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연 워크숍에서 5개월 정도 함께 한 이들을 직접 캐스팅하고 시나리오를 바꾸고 크라우디 펀딩으로 460만엔 정도 되는 제작비를 조달해서 영화가 완성됐다.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거다. 30대가 넘어서 좋은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지금도 나의 가장 친한 이들은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이다. 졸업사진을 .. 더보기
코끼리는 그 곳에 있다 (大象席地而坐 , An Elephant Sitting Still , 2018) 놓치는 영화가 많기에 매년 말에 잡지 등에서 매기는 영화순위를 유심히 본다. '코끼리는 그 곳에 있다'도 영화잡지 filo에서 매긴 순위에서 보고 발견한 작품이다. 러닝타임이 4시간 가깝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개봉도 힘들지 않을까. 후 보 감독은 88년생이고 17년도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났다. 그와 관련해서 찾아보니 영화연출 과정에서 제작사와도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작자가 '북경자전거'를 연출한 왕샤오슈아이 감독이었다는데, 자신도 독립영화의 총아로 시작했는데 제작 관련해서 압박을 가하는 건 모순이 아닐까. 죽음의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연출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건 사실일 것 같다. 자신의 쓴 소설이 원작이라는데, 지루하지 않게 극을 끌고 나간 것만 해도 대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