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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의 묘 (火垂るの 墓 , Grave of the Fireflies , 1988) 별 관심 없다가 왓챠플레이에서 3월 마지막날까지만 스트리밍해준다길래 급하게 봤다. 영화의 배경 때문에 논쟁이 많았던 작품이다. 보기 전에 나의 견해는 어떻게 될지 궁금했는데, 보고나서의 심정은 논쟁이고 뭐고 간에 완성도 자체가 떨어진다는 거다. 아주 과격하게 요약하자면 바보 같은 인물이 바보짓 하면서 죽음으로 돌격하는 이야기다. 전쟁 때문에 희생 당한 아이들에 대해 말한다고 하기에는 인물의 성향 자체가 너무 우유부단 하다. 뻔히 일본이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었음에도 가해자가 자신도 아프다고 토로하는 듯한 배경으로, 가장 연약한 아이들을 내세우는 건 비겁한 방식이다. 무엇보다도, 내 기준에서는 논쟁할만큼 완성도가 높은 작품도 아니다. 더보기
로젠크란츠와길덴스턴은죽었다 (Rosencrantz & Guildenstern Are Dead , 1990) 톰 스토파드의 각색이 특이하다. 그러나 영화보다 연극으로 봤을 때 좀 더 재밌을 극이다. 게리 올드만과 팀 로스의 케미를 보는 게 좋았고, 유머도 좋았었다. 다만 대사들의 핑퐁이 중요한데 번역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내겐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독특하게 각색한 작품, 딱 이 정도로 기억될 듯. 죽느냐 사느냐 이전에, 세상이 정해준듯한 서사 대신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자는 메시지는 좋았다. 더보기
란 (乱 , Ran , 1985) 구로사와 아키라 월드 입문작. 의상의 색감이 놀라웠다.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기도 했는데, 의상 비롯해서 미술이나 소품 등 영화의 프로덕션부터 압도적이다. 전쟁 장면의 매력도 굉장한데, 인물들의 욕망이 충돌할 때의 감정선도 놀랍다. 셰익스피어가 동양에서 '리어왕'을 만들었어도 이 정도로 매력있을까 싶을 만큼 좋았다. 더보기
맥베스 (Macbeth , 2015) 오슨 웰즈와 저스틴 커젤이 각각 만든 '오델로'와 '맥베스'를 연달아서 보고 나니 셰익스피어의 원작소설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졌다. 늘 겉핥기로만 알았지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으니까. 고전적인 대사들을 독백처럼 다 읊는 영화의 방식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비극의 성격을 잘 살릴 수 있게, 예언에 매달리는 맥베스에게 집중하는 방식이 좋았다. 마이클 파스벤더와 마리옹 꼬띠아르는 워낙 연기 잘하는 배우라 다른 작품에서 볼 때와 비슷한 감흥으로 봤다. '싱 스트리트'에서 주인공의 형으로 나오던 잭 레이너는 죽은 스코틀랜드 왕의 살아남은 아들로 나오는데 비중이 크지 않음에도 인상적이었다. 현대극뿐 아니라 고전에도 어울리는 인상이었다. 패시 콘시딘은 '디어 한나'의 감독이라는 것도 영화가 끝난 뒤에 알았는데, 맥베.. 더보기
오델로 (The Tragedy Of Othello: The Moor Of Venice , 1952) 오슨 웰즈의 작품은 '카프카의 심판' 이후로 오랜만에 봤다. 원작 소설의 힘이 워낙 커서 연출이 죽을까봐 걱정하며 봤는데, 고전적인 매력이 제대로 사는 작품이다. 배우로서 오슨 웰즈의 매력도 잘 드러나고, 고전에게 바라는 기준치만큼 충족시킨 영화다. 오슨 웰즈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모두 영화화하고 싶어 했다고 하는데, 특히 배우들에게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주연을 하고 싶은 건 공통적인 욕심이 아닐까. 이간질시키는 이아고 캐릭터가 너무 얄밉고, 오델로의 미련함은 왜 이 캐릭터가 후대에 다양하게 변주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오슨 웰즈의 '시민 케인'이 늘 영화사 최고로 뽑혀서 오히려 편견이 생겨서 그의 영화는 잘 안 봤는데, 그의 연출이나 연기의 매력을 처음으로 느꼈다. 어쩌면 그가 아니라 셰익스피어에게.. 더보기
어스(Us , 2019) '겟아웃'은 퇴사한 날 본 영화라 영화의 충격이 그리 와 닿지 않았다. 내 현실이 영화보다 훨씬 퍽퍽했으니까. '어스'는 퇴사 같은 충격 없이 평온한 상태로 봤다. 그래서일까, 내겐 '어스'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주변에서 혹평이 많이 들리는데, 오히려 '겟아웃'보다 쫄깃한 마음으로 봤다. 엔딩은 사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전보단 오히려 없었어야 더 완성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식으로 전개할거였으면 좀 더 많은 단서를 전반부에 넣고, 후반부에 설명적인 대사는 빼야 하지 않았을까. '블랙팬서'의 루피타뇽과 윈스턴 듀크가 부부로 나온다. 윈스턴 듀크가 너무 웃겼는데, 그가 '블랙팬서'에 족장으로 나온 그 사람일 줄이야. 영화 자체는 루피타뇽의 원맨쇼라고 할 만큼 비중이 크고, 1인 2역으로 존재.. 더보기
바이스 (Vice , 2018) 아담 맥케이의 '빅쇼트'는 최고의 작품이다. 그러므로 그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는 당연했다. '빅쇼트'만큼은 아니지만 괜찮은 작품이었다. 전작에 이어서 배우들의 앙상블만으로도 시간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만 받고 끝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남우주연상은 크리스찬 베일이 더 잘 어울린다. 에이미 아담스, 스티브 카렐의 연기도 훌륭했다. 언급한 배우들 모두 상복 없는 배우들이라 안타깝다. 그래도 관객들은 신뢰하고 있으니까. 여전히 위트 있고, 쿠키영상을 이렇게 영리하게 쓴 작품도 없을 거다. 딕 체니가 뭘 하든 별 상관없을 거라는 걸로 시작해서, 아무리 진보와 보수가 싸워도 결국 무관심한 대중들은 별생각 없이 투표할 거라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미국 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보기
아이 스탠드 얼로운 (Seul Contre Tous , I Stand Alone , 1998) 가스파 노에 작품 중에 그나마 제일 순할 것 같아서 봤다.멘탈파괴영화로 유명한 감독이라 그의 세계에 입문하기도 전에 겁부터 먹었다. 결론적으로 '아이 스탠드 얼로운'은 좋은 작품이다.촬영기법에 있어서도 눈에 띄고, 끊임없이 나오는 나레이션은 검열 없이 나온다.온갖 욕망과 부조리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다.스토리 자체가 특이한 것도 아니고, 장면 자체는 정적인 경우도 많은데 촬영과 나레이션으로 극을 풍성하게 만든다. 예술가로서 자신을 얼만큼 검열할지는 늘 큰 이슈다.가스파 노에는 시작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거침 없이 한다.그 인물이 던질법한 이야기를 한계를 정하지 않고 뱉는다.이 정도까지 던질 수 있는 감독이 몇이나 될까.그의 다른 작품들을 도전하는 건 여전히 두렵지만, 그의 선택들이 궁금하므로 결국..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