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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 (大紅燈籠高高掛 , Raise The Red Lantern , 1991) 코로나 이후로 처음으로 극장에 갔다. '1917'처럼 보고 싶었으나 참았던 작품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가야겠다 싶었다. 장예모의 '영웅'을 좋아하는데 그의 초기작들은 이왕이면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다. 지금 아니면 안 보겠다 싶기도 했고. 큰 스크린에서 보는 건 특별한 경험이니까. 오랜만에 가는 극장이라 그런지 보는 내내 가슴 벅찼다. 게다가 공리는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웠다. 장예모의 사회비판은 공리를 통해 더욱 절절하게 다가왔다. 극장이기에 울컥한 장면도 존재한다. 집이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장면. 일단 첫 번째 부인의 큰 아들이 부는 피리소리에 이끌려 올라갔다가 만난 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장면을 멀리서 촬영하는데 그 상황에서 모든 것이 느껴졌다. 또래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팔리듯 결혼 온 여자의 .. 더보기
국외자들 (Band Of Outsiders , Bande A Part , 1964) 고다르의 주간이라 본 작품인데, '비브르 사 비'가 아직까지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이긴 하다. '국외자들'은 뒷부분에 강도짓하는 장면에서 캐릭터들의 우유부단함이 드러나면서 보는 내내 짜증이 났다. 안나 카리나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겠다. 앞부분에 뛰어다닐 때는 미셀 르그랑의 음악까지 더해져서 보기만 해도 좋았다. 카페에서 춤추는 장면은 장 뤽 고다르 영화 통틀어서도 최고가 아닐까 싶다. 안나 카리나가 만들어낸 장면이 너무 많다고 느낀다. 감독 입장에서 이보다 더한 행운이 있을까. 지금까지 내게 있어서 고다르는 인생 어떻게 살든 적어도 남들이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정도가 요지인 듯 하다. 중후반기에 작품색이 확 바뀐다는데 그때는 과연 어떤 인상을 가지고 보게 될지. 더보기
비브르 사 비 (Vivre Sa Vie: Film En Douze Tableaux , My Life To Live , 1962) 고다르의 영화는 볼수록 좋아지는 듯 하다. '비브르 사 비'는 안나 카리나의 존재감만으로도 완성된 작품이다. 캐스팅이 확정된 순간 끝났다고 느꼈을지도.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수난' 속 대사를 따라 나나가 운다. 나나의 운명이 보인다. 불행을 향해 달려가는 운명. 불가항력에 가깝다. 누가 감히 나나의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을 장 뤽 고다르가 나레이션으로 읊고, 프랑소와 트뤼포의 '쥴 앤 짐'이 상영 중인 극장을 지나 나나는 어디론가 끌려간다. 고다르는 직접적인 방식 대신 보여줄 뿐이다. 12장의 구성 중 11장의 철학자가 많은 말을 할 때 나나는 침묵의 가치를 말한다. 누가 나나의 삶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제목의 뜻처럼 자기 생각대로 살 뿐이다.. 더보기
네 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 , Breathless , 1959) 몇 년 만에 본 고다르의 영화다. 하필이면 내가 처음으로 본 고다르의 작품은 '언어와의 작별'이다. 3D인데 서사도 없어서 굉장히 난해하다. 현대미술관에서 상영해줘서 봤는데, 상영 중에 관객들이 그렇게 많이 나가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덕분에 상영이 끝날 때쯤 남아있는 관객은 나를 포함해서 몇 명 안 되었다. 그에 비하면 '네 멋대로 해라'는 친절한 편이다. B급 영화에 대한 고다르의 애정이 묻어나는 데뷔작이다. 초반 30분은 솔직히 졸렸다. 뒷부분으로 가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다만 주인공 남자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안하무인 류의 캐릭터라 짜증나긴 했다. 영화를 다 본 뒤에 진 세버그의 남편이 로맹 가리였고, 둘 다 이른 사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았다. 진 세버그가 살아있었다면 영화사에 많은 변화.. 더보기
온다 (来る , It Comes , 2018) 마감이 아님에도 영화를 본 건 정말 오랜만이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을 좋아하고, '온다'는 제작 발표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기대했다. 보고 나니 용두사미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느낀다. 다소 으스스한 분위기의 작품을 보고 싶어서 봤는데 매력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앙상블이 좋은 영화들을 보기 전에 봤는데, 짜임새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을 배우들이 채워준다. 츠마부키 사토시는 선악이 공존한 얼굴이라 양면적인 캐릭터를 맡기에 좋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고미츠 나나와 쿠로키 하루가 특히 돋보였다. 둘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온다'는 내게 인상적인 작품이다. 마츠 다카코는 후반부에 등장하는데, 내가 아는 마츠 다카코가 맞나 싶을 만큼 독특한 비주얼의 캐릭터로 등장한다. 원작 소설도 .. 더보기
아메리칸 허슬 (American Hustle , 2013) 데이비드o러셀은 캐릭터 구축의 장인이다. 게다가 연기 디렉팅은 어찌나 잘하는지. 내가 배우라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의 작품에 출연할 것 같다. 에이미 아담스와 크리스찬 베일은 아카데미에서 주연상을 받을 때가 되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별로 안 좋아했던 내게, 크리스찬 베일이 '바이스'로 남우주연상을 못 받은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에이미 아담스는 늘 대진운이 안 좋다고 느꼈다. 주연상 조연상 모두 진작 받았어야 했다. 진짜 인상적이었던 건 제니퍼 로렌스다. 워낙 제니퍼 로렌스를 좋아하지만, 이 작품에서조차 무시무시하다. 비중에 비해서 존재감이 너무 커서, 앞으로 오스카에서 여우주연상을 몇 개나 더 받게 될까 싶었다. 브래들리 쿠퍼랑은 워낙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서, 이제 너무 친해졌을 듯.. 더보기
헬프 (The Help , 2011) 내 기준에서 만점 영화. 좋은 메시지를 기분 좋게 풀어낸 작품이다. 작위적이고 도식적인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을 다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캐릭터들의 매력이 크다. 배우 캐스팅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했다. '파 프롬 헤븐'에서도 가정부로 나왔던 비올라 데이비스가 이번에도 등장한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좀 더 희망적으로 나온다. 옥타비아 스펜서와 함께 만들어낸 장면들이 특히 좋았다. 옥타비아 스펜서는 분명 비슷한 표정 같은데 기쁨과 슬픔을 다르게 담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제시카 차스테인과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가 너무 닮아서 1인 2역인가 싶었다. 제시카 차스테인의 작품은 비교적 많이 보았지만,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라스 폰 트리에의 '만덜레이' 이후로는 제대로 본 작품이 없다. 둘이 상.. 더보기
아이리시맨 (The Irishman , 2019) 과연 긴 러닝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했으나 결론적으로 보는 내내 흥미로웠다. 걸작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마틴 스콜세지에게서 바라던 거의 모든 게 다 나온 작품이다. 일단 배우들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풍부하다. 안티에이징 기술이 어색할 줄 알았는데 보면서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내겐 늘 젊은 갱스터 이미지인 로버트 드니로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돌아 보니 알 파치노가 나온 작품을 많이 못 봤다.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함께 나와서 화제가 되었는데, 둘의 상반된 캐릭터가 한 장면에 잡힐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다. 로버트 드니로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마틴 스콜세지의 페르소나로 불리지만, 사실 원조 페르소나는 하비 케이틀이다. 분량이 적어서 불만이 있을 법도 할 텐데, 상대적으로 비중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