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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2009)



'연애'는 영화 속 단골주제인 동시에 가장 사랑받는 소재이다.
그 덕분에 매년 전세계적으로 로맨틱코미디가 쏟아지고 있다.
비슷비슷한 로맨틱코미디가 많아서인지 몰라도 로맨틱코미디는 평단에서 그리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500일의 썸머'는 내가 여태껏 보아온 '연애'를 주제로한 영화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이다.
이 영화는 현재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 영화의 감독인 마크웹은 샘레이미를 대신해서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새로운 감독이 될 예정이고,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인 조셉고든레빗도 현재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차기주연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 영화의 포스터만 보아서는 로맨틱코미디 감독이 스파이더맨시리즈의 감독을 한다는 것에 의아해하겠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나면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대해 큰 기대감을 가지게 될 것이며, 이 영화 자체에서도 많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장르를 로맨틱코미디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다.
포스터만 보아서는 마치 워킹타이틀 사에서 제작한 로맨틱코미디인 '러브 액츄얼리', '브릿지 존스의 일기' 등과 비슷한 류의 영화로 보이지만 사실은 실연당한 남성이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와 더 비슷하다.
이 영화는 실연당한 남성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




영화의 남자주인공인 탐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썸머에게 반하게 된다.
썸머는 구속받는 것이 싫다면서 자신을 좋아하는 탐에게 친구로만 지내자고 말한다.
둘은 친구로서 만나지만 친구 이상으로 깊은 관계가 된다.
톰은 여전히 친구사이임에도 마치 애인처럼 느껴지는 썸머에게 점점 더 빠지게 되고, 둘의 관계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게 된다.

대부분의 로맨틱영화가 연인의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주지만,
이 영화는 영화 초반부터 썸머를 처음 만난 날과 이별을 한 날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사실 연애를 하면서 좋은 순간도 있고 화가 나는 순간도 있듯이 이 영화의 편집은 마치 연애하는동안 남녀가 느끼는 복잡한 심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껑충껑충 점프한다.

영화 속 탐과 썸머가 만날 때 탐이 썸머의 작은 행동에도 민감하게 행동하는 부분은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와 상당히 비슷하다.
물론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도 남녀관계 속에서 여성들이 착각하는 부분에 해서 냉정하게 말하려하지만 영화의 원작인 책과는 달리 엔딩 부분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다소 상투적인 영화가 되어버렸는데,
이에 비해서 '500일의 썸머'의 시나리오는 끝까지 연애에 대해서 담백하게 풀고 있다.

연애에 대해서 담백하게 풀어낸 부분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연상시키고,
먼저 다가오지만 상처를 주는 여성의 모습과 실연을 당한 남성이 성숙해지는 모습은 마치 '봄날은 간다' 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연애를 통해서 한 남자가 변하는 모습은 '이나중 탁구부'로 유명한 만화가인 후루야 미노루가 그린 만화인 '시가테라'와 흡사하다.
'시가테라'는 연애의 과정 자체가 불쾌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와 달리 '500일의 썸머' 속 남녀의 모습은 너무나 귀엽다.




소심한 남자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아마 많은 남성관객들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남자주인공 탐 역할을 맡은 조셉고든레빗은 얼굴이 약간 히스레저를 닮았다.
탐에게 빙의된 상태로 영화를 보았던 내게 탐이 기뻐서 길거리에 나와서 춤추는 장면에서는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영화 마지막쯤에 직장에서 회의를 하는 도중에 사랑에 대한 회의감을 일갈하는 부분에서는 찡한 연기를 보여준다.
만약에 그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주인공이 된다면 토비맥과이어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여자주인공인 주이드샤넬은 캐릭터 자체가 '봄날은간다'의 이영애와 너무 비슷했다.
'봄날은간다'에서 이영애가 유지태에게 '라면 먹고 갈래요?'라고 먼저 손을 뻗고 먼저 떠나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에 썸머도 탐에게 먼저 손을 뻗지만 먼저 떠나고 탐에게 상처를 남긴다.
흔히 말하는 밀고당기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썸머 역할이 주이드샤넬의 외모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 탐은 썸머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마치 사춘기소년과 같은 고민을 하는데, 힘들 때마다 자신의 나이어린 여동생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 때마다 나이어린 여동생은 자신의 오빠에게 나이에 걸맞지 않는 성숙한 대답을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
동생 역할을 맡은 크로모레츠는 '미스리틀선샤인'의 아비게일 브레스린만큼이나 귀여웠다.
성장드라마라는 테마로 보면 '미스리틀선샤인'과 '500일의 썸머'도 꽤나 비슷하다.

감독인 마크웹은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좋은 연출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샘레이미 감독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샘레이미에 이어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연출하게 된 감독이 마크웹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중간에 흑백으로 다른 영화들을 패러디하는 장면에서 잉마르베리만의 '제7의 봉인'이 나올 때 많이 웃었는데, 귀엽게 연출된 장면들이 많아서 보는 내내 즐거웠다.

영화 스텝들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참여진이 많았다.
음악을 담당한 미하엘 다나는 '미스리틀선샤인'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영화 속의 노래들은 하나같이 좋다.
영화 속에 좋은 음악들 덕분에라도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이 더 오래갈 것 같다.

촬영을 담당한 에릭 스틸버그는 제이슨라이트먼 감독의 '주노'의 촬영을 담당했었다.
영화 속에 만화스케치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주노'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이 영화의 프로듀서는 '주노'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메이슨 노빅이다.

실연을 당해서 한동안 마음 고생했다는 스캇 뉴스타터와 오랫동안 한 여자만 만나온 마이클웨버가 합작해서 쓴 시나리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지 않은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좋았다.
시나리오의 대부분이 두 사람의 실제 경험담이라고 하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탐에게 거의 빙의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 마지막 쯤에는 어텀(Autumn)이라는 여자가 등장한다.
썸머와의 아픈 사랑 뒤에 어텀이라는 여자를 만나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될 탐의 모습을 보여주는 엔딩은 이 영화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힘겨운 여름이었지만 여름동안 성숙해진 탐은 가을에는 좀 더 예쁜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참 신기한 영화이다.
이별에 대해서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연애를 하고 싶어지게 하는 이 영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