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vie

폭력의 역사 (A History Of Violence, 2005)




폭력을 테마로 한 영화는 매해 각국에서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관객들을 폭력의 현장 속으로 집어넣고, 관객으로 하여금 액션시퀀스를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한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의 테마도 폭력이다.
다만 제목인 '폭력의 역사'에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폭력을 보여주지만 액션시퀀스를 통해서 통쾌함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폭력의 현장 속에 있는 관객으로 하여금 사유하게 만든다.
크로넨버그는 영화를 통해서 도대체 왜 지금 폭력이 벌어지고 있는가라고 관객에게 되묻는다.




영화 속 주인공은 짧지만 강한 액션시퀀스를 보여준다.
관객들은 선량한 주인공이 악당을 제압하는 모습에 환호한다.
그리고 크로넨버그는 주인공이 악당을 제압하는 모습 뒤에 바로 피범벅인 된 악당을 보여준다.
격투기를 놀이문화로서 즐기는 현시대의 관객들에게 폭력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진지 오래이며, 게다가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현장에서 우리는 선의 편으로 보이는 이를 지지한다.

하지만 우리는 '폭력의 역사'의 뒷부분에서 고민한다.
우리가 응원하던 주인공이 사실은 폭력의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심했던 시절의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보자.
내가 사는 평화로운 마을에 빨갱이가 있다는 소문이 있고나서 군인들이 나타나 마을주민들을 괴롭힌다.
그 와중에 정의로워 보이는 마을주민 한 명이 그 군인들을 멋지게 제압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계속해서 군인들은 마을에 나타나고, 정의로운 마을주민은 홀로 그들을 제압하고, 남은 마을주민들은 그를 응원한다.
사실 자기들을 괴롭히는 그 군인들이 잡으려하는 그 빨갱이의 정체가 자신들이 응원하는 정의로운 마을주민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사람들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폭력의 현장 속에서 선의 역할을 맡은 이를 응원할 뿐, 폭력의 근원을 색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이 응원하는 이가 사실은 폭력의 근원일 것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크로넨버그의 연출이었다.
내가 크로넨버그를 굉장히 심오한 감독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있는 씬에서도 쉽게 웃지는 못한 것 같다.
영화 초반에 롱테이크에서부터 관객으로 하여금 긴장하게 하는데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영화 전체의 호흡이 끊기지 않고 편집도 거침없고 어느 장면 하나 낭비되었다는 느낌이 없어서 좋았다.
영화 스텝 대부분이 그동안 크로넨버그와 작업해 온 이들인데 그렇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아라곤으로 유명한 비고 모텐슨의 연기도 굉장하다.
솔직히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보고나서 비고 모텐슨이 현대극에서 그것도 자기 혼자서 이끌어가는 영화를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기대 이상이다.
'트루먼쇼'로 유명한 에드 해리스는 짧게 등장하지만 임팩트가 굉장하다.

크로넨버그의 차기작은 프로이트와 융의 이야기라고 한다.
게다가 프로이트 역할은 올해 '바스터즈'로 오스카와 칸을 포함한 모든 영화제의 남우조연상을 휩쓴 크리스토프 왈츠이다.
크로넨버그와 크리스토프 왈츠의 만남만으로도 기대되는데, 프로이트의 이야기라니.
크로넨버그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