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Carol, 2015)

Movie 2016.02.07 18:09

 

 

피키디리 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봤는데 기억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cgv로 바뀌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캐롤'은 워낙 평이 좋아서 기대하고 봤다.

잘 짜여진 영화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감정적 울림이 엄청나게 크지는 않았다.

크리스토퍼놀란의 영화만큼이나 꼼꼼한 짜임새를 보여주는 영화다.

토드헤인즈의 완벽주의를 엿볼수 있는 영화였다.

 

서사 자체가 그렇게 잘 짜여진 영화는 아니다.

도식화된 상징들도 꽤나 보이고,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영화다.

즉, 이야기 이외에 영화를 채울 요소가 무척이나 많다는 것이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참고했다는데, 영화의 어느 지점에 멈춰도 마음이 흔들릴 만큼 매혹적인 미쟝센으로 가득하다.

에드워드 러취맨의 촬영, 샌디 포웰의 의상, 카터 버웰의 음악까지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거의 완벽에 가깝다.

정서적 울림을 위해서 필요한 장치들이 거의 완벽하게 설치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은 디테일 속에 산다는 말처럼, '캐롤'은 영화의 디테일들이 모여서 정서적 감흥을 이끌어내는 경지를 보여준다.

 

케이트블란쳇의 모자가 계속 아른거린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그녀의 머리색과 함께.

그녀를 보면 '교양 있다'라는 수식어를 떠올리게 된다.

메릴스트립만큼이나 연기의 폭이 넓은 배우이기도 하고, 목소리만 들어도 매혹당하게 된다.

 

칸영화제에서 루니마라가 엠마누엘베르코와 여우주연상을 공동수상한 것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루니마라와 케이트블란쳇이 함께 받았어야 한다는 평이 많았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더욱 공감하게 된다.

루니마라의 연기도 정말 좋았지만, 케이트블란쳇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루니마라는 오드리헵번과 나탈리포트만을 닮았다고 느꼈지만 볼수록 그녀만의 매력이 보인다.

'소셜네트워크'와 '그녀'에서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그녀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는 처음으로 봤는데, 살짝 들려있는 입술이 참 매력적이다.

그녀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는 영화다.

사랑을 깨닫고 성장한다는 면에서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도 떠올랐다.

 

원작소설 작가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실제로 백화점에서 어떤 여인을 보고 느낀 강렬함을 계기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당시 느낀 감정을 단숨에 써내려갔는데, 그 시기에 수두에 걸려서 열병을 앓았다고 한다.

몸이 아픈 것을 사랑의 열병으로 생각할만하고, 마침 그런 시기에 쓰였기에 이런 소설이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토드헤인즈는 작품 사이의 텀이 긴 감독이라 그의 차기작을 만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실 '캐롤'의 감정선을 충실히 따라가긴 힘들었다.

예쁜 화면과 꼼꼼한 연출에 감탄하다보니 어느새 영화가 끝나있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사실 내겐 성별보다도 계급이 훨씬 더 크게 보인 영화였다.

욕망에 대해 솔직해질 수 있는 여유조차 계급으로 정해지는 느낌까지 받았다.

어느 사회에서나 비슷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계급을 전복시키는 순간도 욕망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종속되어있던 계급양식에서 이탈하는 순간은 대부분 욕망에 충실할 때이다.

 

내가 지금 가진 것을 잃더라도 가지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는 것.

이성적으로는 결코 판단하기 힘든 일이다.

그것을 이뤄내는, 남들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그런 순간을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낭만적으로 여긴다.

 

그런 순간이 온다면 두려움과 기쁨 사이에서 어디에 방점을 찍을지 고민하겠지만, 기쁠 것 같다.

아직 내게도 이렇게 욕망에 솔직할 용기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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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쇼트 (The Big Short, 2015)

Movie 2016.02.07 18:09

 

 

 

'캐롤'을 보고나서 바로 연달아서 봤다.

영화를 연달아서 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일단 기억이 섞일 위험이 크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보고나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봤을 때도, '마카담스토리'를 보고나서 '어린왕자'를 봤을 때도, '가족의 탄생'을 보고나서 '더 퀸'을 봤을 때도 그랬다.

훗날 생각해보면 전혀 연관없어 보이는 두 영화가 섞여서 함께 떠오른다.

이래서 영화의 개봉시기라는 것도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캐롤'은 무척이나 좋은 영화지만, '빅쇼트'가 더 좋았다.

'캐롤'은 내게 완전히 딴 세상을 보여주는 정말 '영화' 같은 영화라면, '빅쇼트'는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울만큼 내 삶과 밀접하게 붙어있는 영화다.

 

마이클무어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편집이 이렇게 개성있게 된 영화도 참 오랜만에 본다.

영화의 리듬이 너무 좋아서 뜬금없어 보이는 장면들조차도 집중해서 보게 만든다.

 

중간중간 뜬금없이 유명인들이 금융용어 설명하는 것도 유쾌했다.

이렇게 진지한 소재를 위트있게 다뤄내니 안 좋아할 수가 없다.

 

하나의 사건을 여러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는 방식도 좋았다.

게다가 각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이 워낙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크리스천베일은 무엇인가 하나에 집착하는 역할이 참 잘 어울린다.

광기를 폭발시키는 역할보다 광기를 안에 담아둔 채 애써 담담하게 살아가는 역할을 잘 소화해내는데, '빅쇼트'에서의 캐릭터가 그렇다.

'위플래쉬' 보면서도 드럼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빅쇼트'에서 크리스천베일을 보면서 드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파이터'로 오스카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적 있는데, 그도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나 싶다.

최근 들어 가장 훌륭한 메쏘드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이기도 하고.

 

'빅쇼트'에서 가장 비중이 큰 캐릭터를 맡은 배우는 스티브카렐이다.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나 '미스리틀선샤인'을 통해 그를 봤을 때는, 그가 코미디연기에만 능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심각한 표정을 한 그를 보면 팀로스가 떠오르는데, 오히려 팀로스보다도 더 깊은 지점을 보여준다.

어느새 위트 있는 스티브카렐보다도 심각한 스티브카렐이 먼저 떠오른다.

두 가지를 모두 보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좋은 배우다.

 

'캐롤'에도 나왔던 존 마가로를 비롯해 조연배우들의 연기들도 좋았다.

브래드피트는 거의 조연급인데, 자신이 속했던 세계에 회의를 느끼고 탈출한 캐릭터로 나온다.

최근 브래드피트는 제작자로서의 재능을 워낙 많이 보여주고 있어서, 그가 나온 영화를 보면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나부터 확인하게 된다.

 

라이언고슬링은 메인 나레이터이자 가장 위트있는 캐릭터로 나온다.

다소 얄밉기까지 한데, '드라이버' 같은 영화에서조차 그를 보면서 아무리 진지한 표정을 해도 그 안에서 위트가 묻어나는 것을 느꼈다.

아예 위트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를 보고 싶었는데, '빅쇼트' 속 그의 캐릭터가 그랬다.

 

모든 면에서 탁월하고 영리하다.

이렇게 영리한 각본을 만나면 흥분할 수 밖에 없다.

 

최근 봤던 '레버넌트'가 자연 속 투쟁기라면, '빅쇼트'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덕분에 훨씬 더 생생하게 피부로 와닿았다.

명대사를 따로 뽑기가 힘들만큼 좋은 대사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경제불황에 배팅을 걸어서 승리해도 유쾌할 수만은 없다는 것, 권위를 가진 이들을 믿을 때 주로 친숙함에 의존해서 그들을 믿는다는 것 등, 씁쓸하게 곱씹게하는 대사들이 많았다.

 

모든 이들이 견고하게 믿는 부분에 대해 불신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생존을 위해서 불신이 미덕이 되는 사회라면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닐 것이다.

아담맥케이의 차기작만큼이나 금융이나 경제 서적을 보고싶은 욕망을 증가시키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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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와 숫자들) - 방공호

Music 2016.02.06 13:50

 

 

 

들어와요 어서 들어와요
내가 만든 작은 세상으로
졸린 곰도 길을 잃은 다람쥐도
어림없죠 그대밖에는

들어와요 들어와요
창이 없어도 나는 빛을 볼 수 있어
들어와요 어서 들어와요
내 마지막 온기는 그대 것이니까

나는 깨어있을 거예요
매일 밤 그대 곤히 잠들 때까지

봄이 오면 함께 떠나요
모든 슬픔 여기 가둬두고서

들어봐요 귀 기울여 봐요
내가 지은 그대 위한 노래
밤 짐승도 약이 오른 아기 새도
소용없죠 그대 앞에선

내일은 더 찬 바람이 분대요
철새들은 어제 출발했어요

극명하던 푸르름과 시들음의 차이도
하얀 눈 속에선 의미를 잃어가네요

들어와요 들어와요
초라하지만 여기만은 안전해요
들어와요 어서 들어와요
내 마지막 향기는 그대 향해 있으니

나는 깨어있을 거예요
매일 밤 그대 곤히 잠들 때까지

봄이 오면 함께 떠나요
모든 슬픔 여기 가둬두고서
모든 두려움 다 떨쳐버리고

 

 

 

내 주변에는 9와 숫자들의 팬이 많다.

사실 난 그들의 곡에 큰 매혹을 못 느꼈다.

 

그런데 이번에 발매된 9의 싱글 '방공호'를 들으면서 내가 원한 감성이 이런 것이라고 느꼈다.

어쿠스틱한 팝발라드를 좋아하는 내 성향상 9와 숫자들의 기존 곡들보다 이번 9의 싱글이 훨씬 더 많이 마음에 와닿았다.

 

특히 가사가 굉장하다.

그동안 9와 숫자들의 곡을 듣기보다도 그들의 가사를 많이 들춰보곤 했는데, '방공호'의 가사는 굉장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9의 목소리와 피아노반주, 가사 모든 것이 사랑노래의 클래식을 만들어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방공호, 내 마음 속 보금자리.

그것을 타인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아.

혹시 이 공간이 누추하게 느껴지진 않을까 얼마나 많은 정리가 필요했을까.

그 사람에게 나의 방공호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말하기까지의 과정들을 생각하면 울컥하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 심연을 나누는 일이다.

내가 이렇게 아껴둔 공간이지만 너에게 보여줄거야, 그리고 이왕이면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난 사실 이런 생각을 깊은 곳에 숨기고 살아, 네가 내 안을 탐험하다 찾기 전에 미리 보여주고 싶어.

들키기보다 먼저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어.

 

방공호에 들어왔다가 나간 사람이 많아질수록, 나의 방공호는 좀 더 단단해지고 접근하기 힘들어진다.

아예 닫힌 채, 내 마음 속 가장 깊은 말을 아예 매장시키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누군가 물으면 방공호 따위 없다고, 그런 것은 필요없다고 말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낼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진 순간 둘만의 세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렇게 사랑에 취해있다가 문득 주변을 돌아볼 때 느껴지는 묘한 기분이 있다.

방공호 안에서 둘이 서로의 숨을 뱉고 내쉬다가 밖에 나오면, 세상은 전쟁 중일테니.

 

닫힌 방공호의 내부에는 한때 서로가 세상이라고 기억하던 이의 숨결과 흔적이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것을 무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순간 방공호는 다시 열리고, 다시 정리를 시작한다.

 

무뎌진다는 것은 성숙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것을 포기했음을 뜻하는 말이다.

 

포기하지 않은 이들만이 방공호를 지키고, 살아남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인연의 투쟁 속에서 상처 받은 이들만이 방공호를 가질 수 있다.

 

끝까지 나의 방공호를 사수하고 싶다.

영원히 방공호 속 세계를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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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The Revenant , 2015)

Movie 2016.02.06 13:50

 

 

수염이 빨리 자란다.

미친듯한 속도로 자라기에 매일 면도를 한다.

매일 조금씩 얼굴에 상처가 난다.

 

정말 면도를 하고 싶지 않다.

쉬는 날에는 면도를 안 하고 집에 있는 게 좋다.

만약 면도를 했는데 갑자기 약속이 취소가 되면, 면도한 게 아까워서라도 나가야 한다.

내 피부에 상처를 내면서 면도까지 했는데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면도를 했고, 약속이 취소됐고, 가까운 극장들 상영시간표를 확인하고 대한극장에 갔다.

'레버넌트'를 보자고 결정하고 걱정이 됐다.

러닝타임이 거의 3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봤던 '헤이트풀8'는 자극적임에도 긴 러닝타임에도 힘들었고, 이냐리투 감독의 전작인 '버드맨'보다는 정적일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걱정과 달리 러닝타임 내내 졸기는 커녕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거의 걸작에 가까웠다.

여전히 이냐리투 감독의 최고작은 '아모레스 페로스'라고 생각하지만, '레버넌트'는 좋은 영화임에 틀림없다.

 

누군가는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는 자기과시하기 바쁜 영화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재능 있는 감독이 자기과시를 해주는 덕분에 난 너무 행복하다.

타인을 매혹시킬 재능이 있다면 좀 더 과시하는 것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뻔한 서사를 가진 극이다.

엔딩도 허무하고, 다소 작위적인 부분들도 존재한다.

그런데 전체적인 메시지를 생각했을 때, 오히려 단순한 서사를 선택한 것이 유효하게 맞아떨어졌다.

 

작년에 영화 '도원경' 포스터를 보면서 상상했던 장면들을 '레버넌트'에서 목격했다.

'도원경'은 정말 말도 안 될 만큼 정적이어서 보는 내내 힘들었다.

포스터를 보면서 영화를 상상하는 순간이 참 행복하고, 그 상상을 실제로 보여주는 순간을 보기위해 영화를 본다.

'레버넌트'는 내가 상상했던 순간들을 매혹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자연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미물인지에 대해 보여준다.

인디언과 백인의 역사까지 개입되면서 '레버넌트'의 단순한 서사는 큰 힘을 가진다.

인디언이 살려준 남자가 결국 자신들을 다 파괴시킬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이 영화에 아이러니를 만들어준다.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을 언급 안 할 수 없다.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촬영을 보여주고, 그 덕분에 영화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엠마누엘 루베즈키와 이냐리투 감독이 서로 자기개성을 보여주며 시너지를 내는 부분이 큰 영화다.

 

디카프리오의 최고작은 아니다.

다만, 디카프리오가 생존하는 과정을 목격하며 관객들은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관객에게 극한을 느끼게 해준다.

 

톰하디는 '레버넌트'로 처음으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됐다.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그가 이번에서야 처음 노미네이트 됐다는 사실에 놀랐다.

캐릭터 자체의 매력은 디카프리오가 맡은 캐릭터보다도 톰하디가 맡은 캐릭터가 더 크다.

디카프리오와 톰하디 둘 다 '레버넌트'가 아니더라도 결국 오스카에서 상을 받지 않을까.

 

돔놀글리슨은 '어바웃타임'에 나올 떄만 하더라도 로맨틱코미디에서 소모적으로 쓰일 배우가 될 줄 알았다.

독특해보이는 외모가 오히려 한계점이 될 줄 알았는데 '스타워즈'에 이어서 '레버너트'까지 그의 필모그래피가 이렇게 흐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러 장르에 도전하면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를 보면, 폴다노가 '미스리틀선샤인' 이후에 여러 장르에 도전하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냐리투 감독의 전작 중 하나인 '바벨' 때도 느꼈지만, 그의 영화는 류이치사카모토의 음악과 참 잘 어울린다.

류이치사카모토의 멜로디에서,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나비효과를 느낄 수 있다.

 

이냐리투 감독이 최대한 많은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다.

'아모레스 페로스'처럼 사랑에 대해 말하는 영화로 다시 돌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최근작에서 삶의 투쟁에 대해 느꼈으니, 사랑에 대해 투쟁하는 영화를 찍는 그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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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La jalousie, Jealousy, 2013)

Movie 2016.02.06 12:53

 

 

오랜만에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

주로 미술전보다는 영상전을 보러 간다.

이번에 필립가렐 영화들을 상영해줘서 갔다.

 

회사에서 영어이름을 지어오라고 해서, '필립'이란 이름을 떠올렸다.

필립가렐의 영화를 본 적 없지만, 주변에 필립가렐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기도 했고.

결국 다른 이름을 선택하긴 했지만, 최근에 필립이란 이름에 대해 생각한 시간이 많았다.

 

미술관 가는 길에 백수린의 단편 '여름의 정오'를 읽었다.

전적으로 내 취향인 소설은 아니었지만, 몇몇 장면은 매혹적이었다.

 

오는 길에 봤던 소설 때문이었을까.

필립가렐의 '질투'를 통해 내가 보고 싶은 장면들을 정해놓고 간 것이었을까.

결론적으로 '질투'는 내게 썩 매혹적이지 않았다.

 

프랑스예술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안 좋은 편견들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 같았다.

장뤽고다르를 떠올리는 순간들이 많았다.

난 고다르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고다르를 좋아하지 않는 당신은 편협하다, 라고 말한 영화과 교수가 떠오른다.

취향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인데,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순간 역겨워진다.

 

어쨋거나 '질투'를 보면서 좋았던 순간들은 주인공의 딸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워서 마음이 흔들렸다.

 

그 외에는 딱히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흑백의 화면, 연인의 이야기.

서로 헤어지고 상처주고 다시 만나는 과정들.

어차피 사랑이야기는 뻔하다.

그런데 이 뻔한 이야기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함이,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필립가렐의 영화 두 편을 연달아보려고 미술관에 왔으나 '질투'를 보고나서 포기했다.

오히려 필립가렐의 영화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필립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리저리 굴리며 상상했던 순간이 더 좋았다.

필립가렐을 좋아하는 친구로부터 필립가렐에 대해 듣는 순간이 더 즐겁다.

 

필립가렐의 영화보다, 필립가렐을 좋아하는 친구를 통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아주 뻔하고, 가끔 특별한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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