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이야기 2014/10/20 15:08




1. 드라마

삶이 공허할수록 드라마나 영화에 의지하게 된다.


2. 라인업

매년 이 시기에 제일 가슴 떨리는 순간은 부산국제영화제 라인업이 공개되는 것이다.
쟁쟁한 감독들의 신작 라인업.

항상 학기 중에 개막하기에, 부산국제영화제는 여태껏 한 번 밖에 못 가 보았다.
그때도 연극 끝나고 밤새 뒤풀이하고 버스에서 실신한 상태로 가는 길이었기에 애초에 힘겹게 영화예매하는 것은 포기하고 식도락 여행을 했다.

그 당시 함께 부산에 간 이들은 알고 있었다.
이런 조합으로 우리가 다시 여행을 갈 일이 없을 것이라는 걸.
엄청 친한 친구들이 아닌데 그렇게 충동적으로 여행간 것도 처음이었고, 몹시 재밌었다.
다음이 없을걸 알아서 그랬을까.

어쨌거나 부산국제영화제에 가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씨네21에 나와있는 영화제 라인업을 보며 개봉하면 봐야겠다고 점찍고, 줄거리만 봐도 재밌는데 실제로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두근거리는 것에 만족한다.
이런 두근거림의 출처는 뭘까.
막상 영화를 보면 이 두근거림은 사그라들텐데.

그런 걱정하기에는, 내겐 작은 두근거림도 소중하다.
두근거릴 일이 요즘 얼마나 있겠는가.
있어도 안 좋은 일로 두근두근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두근두근할 생각이다.


3.  본론

본론만 말할게,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목적지가 있는 말인데 괜히 빙빙 돌려서 말해야하는 순간이 있다.

빙빙 돌려말하는 동안 오가는 시시콜콜한 말들.
그 말들에 정이 간다.
한 때는 그것들이 작위적이라고 생각하고, 본론만 툭하고 뱉을까 했다.
그런데 그런 시시콜콜함조차 없으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대화가 현격하게 줄어든다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시시콜콜함이 우리를 유지시켜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라도 안부를 물어야지.
본론이야 때 되면 알아서 말하겠지.


4. 벨소리

처음 핸드폰을 구입한 것이 중학교 때였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핸드폰이 몇 번 바뀌었지만, 단 한 번도 벨소리를 켜둔 적이 없다.
항상 진동 아니면 무음이다.

나 자신을 벨소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폐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참 편하다.

내가 지키고 싶은 폐쇄성의 경계선이 분명 존재한다.
평소에 갇혀있다가 내가 나오고 싶을 때만 나오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난 내 벨소리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5. 일기

주말만 되면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덕분에 주말이 기다려졌다.
편지에 쓰기 위해서 내 일상을 견뎌왔다.
매일 자기 전에 일기를 썼다.
통화와 편지가 즐거웠고 기록하고 싶어서.

이젠 몰아서 일기를 쓰고 있다.
익숙해진줄 알았던 통화가 어색해졌고, 편지는 생일에나 써주는 것이 되었다.

참 별 것 아니라고 느껴졌는데, 이것들이 일상에서 빠지니 시간이 참 많아졌다.
편해졌다.


6. 손인사

시력이 안 좋다.
멀리서 누군가 올 때 아는 사람인줄 알고 인사했는데, 알고 보니 모르는 사람이었던 적이 많다.
나나 상대방이나 당황했던 적이 많다.

이젠 그런 일이 줄어들었다.
시력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단지 먼저 손을 흔드는 일이 줄어들었다.

좀 더 좋아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누군가를 당활시킬 일 따위 없을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등애
Movie 2014/10/20 14:45


우울할 때 찾는 영화들이 있다.
영화사에 남은 걸작은 아닐지라도,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들.
'하나와 앨리스', '스윙걸즈', '미스리틀선샤인' 같은 영화들이 내게는 그런 영화들이다.
그리고 이제 영화 하나를 추가해야할 것 같다.
바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다.

워낙 제니퍼로렌스를 좋아해서 보게되었다.
데이빗O러셀 감독은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데 도가 튼 배우이다.
오스카상을 받으려면 데이빗O러셀 감독을 찾아가는게 좋겠다고 느낄 만큼.

데이빗O러셀 감독의 영화답게 스토리는 단조롭지만, 생기 넘치는 인물로 인해서 극 전체가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권태로운 연애 동안 함께 수백번 걸었던 산책길이 단조롭게 느껴지다가도,  새로운 연인과 걸으면 설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데이빗O러셀의 영화는 배우 보는 재미가 팔할이다.
로버트드니로는 아들에 대한 애정조차도 스포츠내기 앞에 생기는 사람으로 나오는데 로버트드니로가 연기한 코미디캐릭터 중에 제일 웃겼다.
브래들리쿠퍼는 처음에 자신이 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로버트드니로의 추천으로 이 영화에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덕에 브래들리쿠퍼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빛나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안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이 영화를 보고 제니퍼로렌스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원래 앤헤서웨이가 캐스팅되었다가 하차했다는데, 제니퍼로렌스나 이 영화에게나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제니퍼로렌스와 앤헤서웨이가 사이좋게 함께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과 조연상을 받았으니 서로에게 해피엔딩이 아닐까 싶다.

루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경 쇠약 직전의 두 남녀가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자체가 참 매력적이다.
엄청 말도 많고 산만함에도 사랑스러운 것은 전적으로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덕분이다.
상처받은 이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보듬어주는 것만큼 따뜻한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이들이란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존재이다.

주인공 남녀가 춤을 춘다는 설정이 좋았다.
세상에 춤만큼 사랑을 표현하기 좋은 것도 없다.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췄다는 것이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설득력을 만들어준다.
춤의 힘을 우리 모두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댄스 경연대회가 끝나고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기에는 낮은 점수를 받은 주인공 남녀를 향해 사람들은 위로와 연민을 보낸다.
그런데 도리어 주인공들은 가족들이 했던 내기 때문에 자신들이 받은 점수에 대해 환호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기준과 전혀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정해놓은 일반적인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만큼 따분한 것도 없다.
사랑에서나 일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영화를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11월 4일에 제니퍼로렌스가 내한을 한다고 한다.
'헝거게임' 시리즈 홍보차 내한하는 것인데, 오히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보고 찾아오는 이들이 더 많을 것 같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등애
Movie 2014/10/20 14:33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다.
마르크스가 했던 이 유명한 말을 영화화한 것이 '설국열차'가 아닐까 싶다.

김영진 평론가의 글에서도 나온 말인데, 봉준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가 목적지를 거짓으로 알려주는 버스와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A에 간다고 승객을 태우고서 B에 내려준다.
승객들은 불평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가는 도중에 봤던, 도착하고 본 풍경에 얼이 빠져서 운전기사의 거짓말을 용서해줄 뿐만 아니라 감동하기까지 한다.

사실 봉준호가 했던 이런 말들은 전작들에서 훨씬 더 잘 지켜졌다.
'설국열차'는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서는 노선을 훨씬 예상하기 쉽다.
특히 막판에 커티스와 남궁민수가 나누는 대화는 봉준호의 시나리오가 맞나 싶을만큼 과잉되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라는 느낌보다, 잘 만든 헐리웃의 기성품 같다는 느낌이 더 큰 작품이다.
누가 봐도 흥미로운 영화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예카테리나 브리지 전투 장면만으로도 가치 있는 영화이다.
최첨단 시설의 열차 안에서 신석기 시대인 것마냥 횃불을 들고 싸우는 장면에서야 비로소 봉준호영화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네21에서 영화인들에게 죽기 전에 보고 싶은 영화 세 편을 뽑으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어떤 평론가는 봉준호 감독이 만들게 될 멜로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서 나 또한 봉준호 감독의 멜로영화가 궁금해졌다.
그 어떤 장르에서도 자기색을 잘 보여주는 봉준호 감독이 만들어낸 사랑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랑인줄 알았지만 그것이 아닌, 이번에도 다른 정류장에 내려주고 시치미 떼는 그런 버스기사가 되어주려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등애
Music 2014/10/20 14:29



녹아 흐르는 아스팔트 위에
귀를 기울여 들었던 소리
오늘도 지구는 나를 제쳐 두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

따가운 날을 피해서 다니다
만나 버렸던 많은 사람들
어딘가 멀리에, 멀고 먼 나라에
모두 잠을 자러 돌아가

나는 얼마나 더 달아날 수 있을까
너덜너덜 헤진 몸뚱일 가누네
나는 얼마나 더
너의 까만 눈을 견뎌내야
제대로 설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있어
차는 숨을 내쉬며 살아있어
다신 그대와 느릿느릿하게
늘어져 가는 시간을
세어 볼 수 없어도

당신의 체온을 느끼려 해도
여전히 이곳은 나쁜 날씨
좋은 시절들은, 항상 끝이 날까
마음만 잔뜩 커다래져

나는 얼마나 더 살아갈 수 있을까
헤아릴 수 없는 내일이 불안해
나는 얼마나 더 돌아가는
땅을 견뎌내야
제대로 설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있어
차는 숨을 내쉬며 살아있어
어지러워요, 날 찾아내 줘요
꺼지지 않는 나의 두려움

새빨갛게 흐드러진 해 질 무렵 공기
하루만큼 늙어 버린 사람들의 냄새
무엇보다 숨을 참기 힘든 이 세계를

분명 나는
좋아한다 생각해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있어
차는 숨을 내쉬며 살아있어
그대도 어딘가에서 살아가
꺼지지 않는 나의 그리움




주변에서 쏜애플을 추천해줘서 앨범을 쭉 한 번 들었던 적이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어서, 내 취향과는 안 맞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네이버에 뮤지션리그라는 메뉴가 생겨서 들어가보니, 인디뮤지션들의 음악이 많이 올라와있었다.
쏜애플의 '아지랑이'의 스튜디오 버전을 듣게 되었는데,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세션을 추가해서 연주하니 몽환적인 쏜애플의 사운드가 훨씬 돋보였다.

이런 경우가 참 많다.
처음에 보았을 때 별 감흥이 없다가, 하나하나 뜯어보다가 그 매력을 느끼는 경우.
이건 영화나 음악, 사람 모두에게 통하는 이야기이다.

어느새 나는 첫인상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두 번째 인상이 내게는 훨씬 중요해졌고, 그것이 내 삶에 더 잘맞는다고 생각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등애
Movie 2014/10/18 17:43


홍상수 영화에 대해서 말할 때 제일 조심스럽고 힘들다.
그저 '좋았다'라는 말만 뱉을 뿐.

진짜 진실은 없고, 서로 진실이고 싶은 것을 믿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진실은 없고, 서로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에 대해 말하는데 소통이 되고 있는게 참 신기하다.

해원은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결국 모두 다 알게 된다고 말하지만, 난 아직도 이 영화의 비밀을 잘 모르겠다.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비밀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이 영화가 정은채라는 배우를 위한 영화라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해서 말 할 수 없다.

해원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녀의 며칠을 지켜보고, 그녀의 꿈까지 봐버렸지만 쉽게 말 한 마디 할 수 없다.
아마 홍상수가 만들어낸 수많은 인물들에게 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싶을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꿈에 대한 수많은 시들보다도 기형도의 시 '소리의 뼈'가 생각났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등애
<PREV NEXT> 1 2 3 4 5 ... 129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