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랑이 걸어왔다 (Lullaby For Pi , 2010)

Movie 2016.09.04 23:40

 

 

 

아름다운 사랑은 항상 나를 지나쳐가요

왜 그러지 이유조차 모르겠어요

희망은 희미하게 보이는데

갑자기 당신이 걸어왔어요

 

사랑은 무대 위에서 배우만 하는 줄 알았어요

아니면 책에서만 나오는 단어라든지요

사랑은 절대 받을 수 없는 상 같은 거였어요

그때 갑자기 당신이 걸어왔어요

 

봄이 처음 온 날 비추는 한줄기 햇빛처럼

차가웠던 내 마음을 당신이 녹여주었어요

세상이 원래 초록빛이라는걸 느끼게 만들면서요

이제껏 이렇게 행복하게 사랑의 바보가 된 적 없어요

지금은 완전 바보가 되었어요

너무 기쁘게도 당신에게 빠졌어요

 

여기 당신이 서있네요

마치 꿈을 이룬 것 같아요

그 꿈을 이룬 사람 이제 당신꺼에요

이제야 진정한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알았어요

당신이 나에게 걸어왔을 때요

 

 

영화 속 삽입된 'suddenly you walked in'의 가사이다.

이 영화에 대해 잘 설명한 곡이다.

아니, 이 영화를 떠나서라도 사랑에 대해 잘 담아낸 곡이다.

영화를 수입해오면서 원제를 직역한 게 아니라, 영화에 삽입된 곡의 이름을 제목을 활용한 것은 정말 영리한 선택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날, 내게 사랑은 영화나 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같다는 말을 했었다.

사랑이란 단어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말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 상황과 맞닿은 장면이 많다보니 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어느날 갑자기 남자의 방에 한 여자가 들어온다.

남자는 당황하다가 이내 그녀와 친구가 된다.

마침 그가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중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낭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남자에게, 그녀는 단숨에 사랑의 주인공이 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음악이자 영화가 되어준다.

 

그리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다.

뮤즈가 떠난 뒤, 그의 음악은 청자가 사라져서 의미를 잃고, 좋아하던 영화는 이제 불가능한 낭만의 장면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에게 마치 몇 년 전처럼, 한 여자가 들어온다.

그의 방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녀는 그에게 쌍방의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말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그는 오랜만에 청자를 얻고 노래를 부른다.

그에게 음악은 사랑을 전하는 것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들은 화장실문을 사이에 두고 점점 가까워진다.

서로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그들은 서로에게 추측해본다.

남자에게는 사랑을 잃었던 기억이, 여자에게는 불안한 자신이 일종의 장벽이었을 것이다.

 

우연하게도 만난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준다.

이들은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서로의 상처가 맞닿은 순간 돋아날 새살을 상상한다.

서로의 결핍을 인정하고 채워줄 수 있는 순간의 충만함, 그것이 사랑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순간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수많은 우연들이 겹쳐져서 만들어지는 순간들에 대해서.

완벽보다 결핍에 끌렸던 순간들에 대해서.

결핍을 예쁘게 보듬어주는 그 과정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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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어덜트 (Young Adult , 2011)

Movie 2016.09.04 23:39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작품이기에 봤다.

샤를리즌 테론의 원맨쇼라고 할만큼 그녀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영화이다.

그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들이 '몬스터'와 '매드맥스'인데, 그녀는 항상 외롭고 힘들게 투쟁하듯 살고 있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서 그녀가 사랑을 듬뿍받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싶다.

 

영 어덜트 장르의 소설을 대필하는 그녀는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길 원한다. 

그래서 자신의 가장 빛낫던 시절을 함께한, 과거의 남자친구와 재결합을 꿈꾸며 고향으로 떠난다.

문제는 그녀의 전 남자친구는 딸을 출산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겉보기와 다르게 자신을 원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그에게 찾아간다.

 

그녀의 이런 사고방식이 신기한 동시에 공감되었다.

자신을 과거의 화려한 시절에 가둬놓고, 자신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과 동일할 것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한다.

그래야만 자존감이 서기 때문이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자신의 과거는 빛났기에 그 시절에 자신을 묶어두고 현재의 자신을 보지 않는다.

그 시절의 그녀는 빛났기에, 그가 유부남이고 뭐고 자신을 보고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이 동네는 비린내나고 촌스럽고,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고향을 부정하는 그녀의 모습은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고향친구가 있다. 

그녀가 키스를 날리던 남자들에게 구타당해서 다리를 절며 평생 살아가야하는 남자.

아이러니하게도 그녀 삶의 범주에 속하지도 못하는, 계급적으로 자신과 어울릴 수 없는 그에게는 무척이나 솔직해진다.

그에게까지 품위를 지킬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솔직함은 결국 치유의 계기가 된다.

그녀가 유일하게 솔직할 수 있는 곳, 그녀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곳은 그뿐이고, 그렇기에 그들은 소통에 성공하고 그녀는 치유의 지점에 다다른다.

 

그녀는 영원히 자신과 이성적 감정이 없을 것 같던 그와 관계를 맺고 다음날 일어나서 그녀를 옹호해주는 그의 동생을 만난다.

그의 동생은 그녀에게 철저하게 맞춰주며 자신의 동네를 부정한다.

그녀는 처음에는 그러지 말라고 말하지만, 어느새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다른 동네로 데려다달라는 여자에게 말한다.

너는 이 동네와 어울린다고.

그녀는 또 다시 자신과 마을을 분리시킨다.

화합에 실패한다.

 

그녀의 차는 음주운전으로 앞범퍼가 나간다.

앞범퍼가 나간 차를 끌고 그녀는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나간다.

호텔에 방키를 반납하자 프론트직원은 말한다.

키는 반납할 필요 없다고.

명예회원을 위한 도너츠를 입에 물고 그녀는 나간다.

그녀에게 고향에서의 추억을 반납할 수 없는, 영원히 품고 다녀야할 것이다.

그녀는 명예회원 도너츠처럼, 그 고향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만 품고 가고 싶어한다.

 

나간버린 앞범퍼처럼, 그녀는 고향에서 또 다시 상처를 얻고 간다.

그 상처는 스스로가 만든 상처이다.

그녀는 도시에 돌아와 나가버린 앞범퍼, 가릴 수도 없이 선명하게 나버린 자신의 상처를 응시한다.

그녀는 차의 앞범퍼를 갈아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낮은 자존감은 결국 채우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요즘도 소설 잘 나가냐는 말에 힘든 현실 대신 감당 안 될 만큼 잘 팔린다는 말을 할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결코 남처럼 보이지 않았다.

현대인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을 연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녀는 맷의 여동생에게 행복을 찾기 너무 힘들고, 남들은 행복해보인다고 한다.

그녀는 보이는 것만 볼 뿐, 타인의 사정이나 내면 등에는 관심이 없다.

그녀는 오랜만에 버디를 보러가는 길에, 버디의 사정 따위 개의치 않고 네일아트를 받고 화장을 하느라 바쁘다.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은 참으로 편한 방법이다.

자존감도 마음대로 높일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주고,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에서의 도태를 뜻하기도 한다.

역지사지가 되지 않는 사람의 끝은 결국 사회에서의 추방이다.

 

결핍이 만연한 사회에서 자존감을 가지고 행복해질 방법이, 세상에 대한 자기중심적 해석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사회는 그런 이들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사람들은 파티에 온 그녀를 못 마땅하게 보고, 심지어 그녀의 목적이 된 버디도 그녀를 부를 생각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 연민을 가지고 그녀를 가장 이해해준 것은, 그녀가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한 버디의 부인이다.

과거의 머무르는 그녀와 달리, 버디의 부인은 남편의 과거연인인 그녀에게 질투를 가지기는커녕 오히려 연민을 가지고 보듬어주려는 시도를 한다.

파티에 온 모든 이들이 그녀를 이상하게 보지만, 버디의 부인은 그녀와 충돌하고 대화한다.

그것이 공동체가 가져야할 소통이다.

 

처음에는 삐걱거릴 것이다, 사회에 이탈했던 개인이기에.

하지만 함께 부딪치고 호흡을 맞춰야하는 것이다.

하얀 드레스에 묻은 포도주처럼 처음에는 더럽고 빨아야할 것처럼 보이는 그 충돌이, 결국 하얀 드레스를 아예 포도빛드레스로, 그녀와 공동체를 엮어주는 색이 될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유일하게 아는 맷은 집에 가내수공업으로 양조장을 만들어뒀다.

게이처럼 보인다며 마을에서 배척당하고 여전히 연민의 대상 이상으로 존재하기 힘든 그에게 피규어 색칠과 양조 작업은 그에게 자존감을 키워주는 작업이다.

자신에게 자신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그가 스스로를 견디게 하는 방식이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부정당했다고 무기력해하는 것이 아니라, 양조와 피규어와 같은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그런 풍경을 보며 코웃음 치는 그녀는 애초에 타인의 세계에 대해 별 관심 없다.

오로지 자신의 세계가 좀 더 빛나기를, 다른 이들은 그 세계에 대해 박수쳐주기를 바랄뿐.

 

제이슨 라이트먼이 보여주는 현대인의 결핍이 좋다.

지금 내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감독은 제이슨 라이트먼이 아닐까 싶다.

내 결핍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내 결핍을 스스로 목격해야할텐데, 그의 영화를 통해 나 스스로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당분간은 그의 영화 속 장면들을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디아블로코디가 각본을 썼는데, 완성도 자체는 '주노'가 더 좋지만, 충분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각본이다.

제이슨 라이트먼을 볼수록 가장 많이 떠오르는 감독은 알렉산더 페인이다.

인물들의 결핍, 결핍된 인물들과의 유대를 보면 특히 그렇다.

 

마이크 리의 '세상의 모든 계절'에 나오는 레슬리 멘빌의 캐릭터가 가장 많이 떠올랐다.

자의적 해석으로 세상을 사는 민폐캐릭터.

그럼에도 연민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영 어덜트'는 내게 만점 짜리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 내가 처한 상황 등과 어우러지다보니 그 어떤 영화보다도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영화가 되어버렸다.

확실한 것은 당분간은 제이슨 라이트먼에 대해 기억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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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에어 (Up In The Air , 2009)

Movie 2016.09.04 23:27

 

내가 꿈꿨던 지점, 걱정했던 비극을 단 한 편의 영화에서 모두 목격했다.

즉, 이 영화에서 삶을 봤고, 체험을 했다.

영화의 메시지도 정말 좋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준 삶의 단면은 누구나 공감할 만큼 보편적이었고, 그러한 장면들에 몰입하는 경험은 세계 전체에 대한 통찰로 이어졌다.

굉장히 영리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파이크존즈의 '그녀'를 봤을 때와 느낌이 비슷하다.

제이슨라이트먼 감독의 전작 '주노'를 보면서 영화의 최고주역은 각본가인 디아블로코디라고 생각했다.

스파이크존즈의 영화인 '어댑테이션'과 '존 말코비치 되기'를 정말 좋아하지만 영화의 핵심은 찰리카우프만의 각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직접 각본을 쓰고 아카데미 각본상까지 받은 '그녀'를 통해 그가 영상에 강한 연출자인 동시에 각본가로도 큰 재능이 있음을 증명했다.

제이슨라이트먼이 원작소설을 몇 년에 걸쳐 각색한 '인디에어'도 마찬가지로, 그가 탁월한 연출자인 동시에 각본가라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인디에어'를 보고 조지클루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최근에는 제작자로서의 조지클루니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인디에어'를 보면서 배우 조지클루니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꼈다.

조연들의 연기도 좋았는데, '디파티드'에서 인상적이었던 베라파미가와 '피치퍼펙트'의 안나켄드릭 두 여배우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나온다.

인생의 풍파를 세 캐릭터의 갈등과 균형을 통해서 정말 밀도 있게 보여준다.

 

매력적인 인터뷰 장면이 들어간 영화를 좋아한다.

이창동 감독의 '시'에 나온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인터뷰 장면은 마치 일반인들의 실제 인터뷰처럼 가슴 벅차게 한다.

'인디에어'에서 해고를 위해 인터뷰하는 장면들은 단순한 해고 이상의, 노동이 가진 가치에 대해 말해준다.

 

자본주의는 많은 직업을 만들어냈다.

해고를 대행해주는 업체조차도 만들어냈다.

감정 관련 노동과 유대를 위탁하고, 심지어 면대면이 아닌 화상채팅을 도입하기도 한다.

이것은 노동이 점점 인간을 기계적으로 보고 비인간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것이다.

 

기업 입장을 생각해야지, 라고 말하는 시장자본의 논리를 주장하는 인간조차도 그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본주의 안에서 스스로 던진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 확률이 굉장히 높은 것이다.

 

진짜 안정감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에는 여행이 삶의 최고 목표이고, 누군가에는 안정적인 가정이 목표이다.

기준은 다 다르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동시에 나의 보금자리가 명확한 사람도 되고 싶다.

하지만 선택은 필요하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스스로에게 좀 더 오랜시간 물어야겠다고 느꼈다.

실용과 낭만 사이에서 삶의 양식 자체를 미니멀리즘으로 가져가자는 뜻은 거의 굳힌 것 같다.

무소유라는 삶의 철학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비포선라이즈'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여행지에서의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

여행지에서의 사랑을 일상으로 가져온다는 것이 왜 힘든지 보여준다.

여행지에서의 사랑은 흥미로운 분위기와 적당한 익명성에서 오는 판타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비포선라이즈'는 아예 그러한 부분을 철저하게 인정했기에 멋진 영화가 된 것이다.

물론 '인디에어'는 좀 더 잔인한 방식으로 그 부분을 보여준다.

 

목표라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행복에 대해서도.

내가 진짜 행복했던 장면에 대해, 나의 목표에 대해, 영화가 물었던 이야기들에 대해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 순간 이 영화의 질문은 내 삶에 진입했다.

그렇게 '인디에어'는 내게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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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Tunnel , 2016)

Movie 2016.09.04 23:27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로 인해 몇 가지 포인트를 가지고 볼 수 있었다.

하정우는 '더 테러 라이브'에 이어서 어떤 1인극을 보여줄 것인가,

감독 김성훈은 '끝까지 간다'에 이어서 어떤 장르극을 보여줄 것인가,

로드리고 코르테스의 '베리드'와는 어떤 차별점을 보여줄 것인가.

 

위와 같이 세 가지 포인트를 가지고 봤고, 전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정우의 연기는 여전히 좋은 리듬을 가지고 있고, 김성훈은 최동훈만큼이나 영리한 상업영화감독임을 증명한다.

'베리드'와 차별화되는 점이라면 역시 한국적 정서일텐데, 911테러와 세월호라는 두 재난에 대해 미국과 한국이 어떤 정서를 품고 있냐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좋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유대감, 바로 공동체 의식이다.

'터널'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동체 의식을 희망으로 품고 간다.

시민사회가 회복하기 위해서 가장 최소한이자 최선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공동체 의식이고 현 사회는 그런 면에서 공동체 의식이 굉장히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시스템 속에서 개인은 마치 투기장에 갇힌 것처럼 서로 경쟁하고 투쟁하기 바쁘다.

마치 터널 속에서 살아남는 것처럼, 현재의 시스템에서 개인이 생존한다는 것 자체가 거대한 미션이 되어버렸다.

 

터널 안에 생존자 두 명이 중산층과 사회초년생이었다는 것도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사회초년생이 전화를 해서 생존을 신고하는 동시에 말하는 것은 신입생연수의 참석여부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회사라는 소속이 생겼다는 것은 생존의 실마리를 잡았음을 뜻한다.

취업에 실패한 이들은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으로 취급 당하는, 사회적 죽음을 당하게 된다.

 

터널 안이 아니더라도 터널 밖에서 이미 수많은 이들이 사회적 죽음을 당하고 있다.

다만 뉴스에서는 그러한 개인들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개인의 희생에 대해 당연하게 느껴는 이들은 알아야 한다.

그렇게 개인을 방치하는 시스템 속에 속한 이상, 자기 자신도 언제든 방치될 수 있다는 것을.

 

영화가 끝난 뒤에 더 많은 걱정을 하게 된다.

영화는 끝났지만, 우리의 생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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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원츠 썸!! (Everybody Wants Some!! , 2016)

Movie 2016.09.04 23:21

 

평범한 캠퍼스코미디가 될 수도 있는 영화이다.

그런데 감독이 리처드 링클레이터이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수다에 있다.

 

그가 비포 시리즈에서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많은 수다가 나온다.

게다가 이들이 떠는 수다들에는 영양가가 하나도 없다.

마약,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시종일관 오간다.

 

영화 마지막에 역사학 교수가 칠판에 '자신의 한계는 자신이 정한다'라고 적는다.

이들의 쓸데없어 보이는 수다와 이 말이 닿는 순간 이들의 수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꿈에 대해 걱정하는 방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각 잡고 앉아서 공부한다고 그것이 꿈에 대한 탐험일까.

순간순간 본능에 충실한 것 또한 꿈에 대한 탐험이다.

이 순간이 다신 오지 않을 것처럼 매순간 욕망에 충실한 것.

 

불편하기보다 부러운 마음이 솔직히 더 컸다.

나의 청춘은 스스로를 제약하느라 해서는 안 될 일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저런 대학생활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다른 모습이었을까.

 

음악과 의상이 중요한 영화이다.

'싱 스트리트'와 마찬가지로 음악과 빈티지한 의상의 조합이 청춘에 대한 거대한 단서처럼 등장한다.

분명 촌스러울 수 있는 의상들인데 어찌나 매력적으로 보이던지.

엔딩크레딧에서 배우들이 돌아가면서 랩을 하는 장면도 위트 있다.

 

생각하면 비포 시리즈는 연인이 있는 사람들끼리 타지에서 하는 연애이다.

엄연히 말해서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지만,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항상 그러한 것에 대해 천연덕스럽게 무시하고 본능적으로 다가가고, 심지어 낭만적으로 그 분위기에 취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도 남자주인공이 흥청망청 다른 여자들과 놀다가도 영화 후반부에 한 여자에게 마음을 두고 접근하는 그 부분에서는 대사 하나하나도 낭만적이다.

뻔할 수 있는 요소에 특별한 리듬과 분위기를 넣는데 있어서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무척이나 능숙하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청춘에게 미안해하고 싶지 않다.

내가 나 자신의 욕망 앞에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지 많은 질문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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