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 픽스 (Twin Peaks: Fire Walk With Me , 1992)

Movie 2018.01.21 13:14


'트윈픽스' 드라마를 안 본 상태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구성으로 된 영화다.

드라마의 프리퀄에 해당하는데, 드라마를 좋아했던 이들을 위한 팬서비스에 가까운 영화다.

별 비중 없이 까메오에 가깝게 나오는 인물들에 반가워하기 위해서라도 드라마를 먼저 봐야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트윈픽스'는 죽은 로라에 대한 이야기지만 정작 로라의 이야기는 대부분 타인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로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드라마를 본 이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준다.

썩 매력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드라마의 요약본이 되지 않은 것은 좋지만, 드라마에서 충분히 나온 정보를 굳이 이렇게 친절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팬서비스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그의 드라마를 좋아했기에 반갑지만, 아예 예상못한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안젤로 바달라멘티의 음악과 배우들이 반가웠지만 여러모로 아쉽다.

데일 쿠퍼의 이야기가 좀 더 보고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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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픽스 시즌2 (Twin Peaks 2 , 1990)

Movie 2018.01.20 22:42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거의 다 봤기 때문에 그에 대해 많이 한다고 생각했으나, '트윈픽스' 시리즈가 그의 절반 이상은 될 것으로 예상될만큼 인상적이었다.

모든 인물들을 연결하는 넓은 세계관을 비롯해서 비현실적인 요소를 매혹적으로 다룬다.

시즌1은 사건을 꼼꼼하게 해결해나가는 재미였다면, 시즌2는 이론으로 설명 못할 세계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데이빗 린치의 붉은 방은 그의 세계를 잘 압축해서 보여준다.

분명 위험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세계.

그가 가장 잘 다루는 욕망은 우리가 영화를 보게 하는 이유기도 하다.


시즌3가 나와서 보기 시작한 시리즈인데, 시즌3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시즌1,2와는 달리 모든 편을 자신이 다 연출했기 때문에 그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단숨에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결국 매혹당할 수 밖에 없는 세계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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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Set Me Free , 2014)

Movie 2018.01.14 23:26


'여교사'를 먼저 보고 몇 달이 지난 뒤에 '거인'을 봤다.

'거인'을 먼저 봤다면 '여교사'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겠다 싶을 만큼, '거인'은 좋은 영화다.


한 소년이 있다.

가정으로부터 도망나왔지만, 도망칠 수 밖에 없을 만큼 절망적인 가정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나아져서 돌아갈 보금자리일 것이라고 희망을 건다.

나쁜 것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충고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희망조차 없다면 지금의 전진을 버텨나가기 힘드니까.


소년의 몸은 점점 커진다.

작았던 소년에게 갔던 관심이나 보호는 점점 줄어든다.

저 소년은 이제 몸이 큰 거인이 되었다.

거인은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

한 번도 보호받지 못했던 소년은 보호받지 못하는 소년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거인이 된다.

우는 소년에서 우는 거인이 되었다.


소년은 나쁜 짓을 저지르곤 한다.

누구도 지켜주지 않았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으니까.

우리가 합의한 규칙에 의하면 그는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처럼 보호받지 못한 이를 위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왜 다 침묵하는 것인가.

당신은 진짜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거인이 되어본 적 없는 것이다.

울타리 안에서 계속해서 보호 받으며, 몸은 커져도 사랑받는 자식으로 자라왔을 확률이 높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언젠간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다.

나 하나 못 지키는 삶이지만, 훗날 내가 나를 지키는 순간이 오면 나도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날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보호는 누가 해줄 수 있을까.


거인이 움직인다.

그가 사랑받았었는지, 나쁜 짓을 하고 있는지, 보호받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어떤 시간을 거쳐서 성장해버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뿐.


나는 이 소년을 본 적 있다.

사랑받지 못했다고, 보호받지 못했다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나 스스로 확정 짓고 포기하고 침묵하던 그 순간에 나는 이 소년을, 저 거인을 본 적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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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Django Unchained , 2012)

Movie 2018.01.14 23:26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면 놀라운 순간이 많다.

일단 그는 완전하게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보다 기존의 것을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훨씬 관심이 많다.

그 덕분에 수많은 오마쥬가 아주 노골적으로 묻어난다.

그의 각본 속 긴 수다들은 분명 영양가도 없고 영화의 개연성에도 별 상관이 없음에도 그 대화 자체를 자꾸 곱씹게 되는 불량식품 같다.

엄청나게 많은 인물과 고유명사들이 나오는데, 타란티노처럼 고유명사의 힘, 인물에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의 의미를 잘 아는 이가 있을까 싶다.

대화만으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것에 있어서는 그가 영화역사를 통틀어서도 최고일 것이다.


'장고'는 타란티노의 팬이라면 예상할 장면과 전개로 가득하다.

그는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글을 쓰다 보면 인물들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많은데, 타란티노는 어쩌면 모든 것을 다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영화 속 단점들조차 달콤해서 다 삼켜버리고 싶다.

시시한 영화들을 보고나면 자연스럽게 그의 영화를 한 번 더 보게 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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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1987:When the Day Comes , 2017)

Movie 2018.01.03 01:07


평일에 퇴근하고 극장에 간 것은 오랜만이다.

회사 근처에 극장이 많다는 것은 복이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불이 켜지는 극장은 영화가 끝날 때쯤 후회하게 된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와 마찬가지로 '1987'도 엔딩크레딧이 굉장히 중요한 영화이기에 불이 켜지는 순간 감흥이 싸늘하게 식어서 자꾸 씁쓸한 뒷맛으로 남는다.


박종철에서 이한열까지,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다룬다.

'택시운전사'와 '1987'의 공통점이라면 장훈, 장준환 두 감독 모두 이전 작품들은 본인의 시나리오로 연출한 작품이지만, 근현대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건을 소재로 다른 사람의 각본을 토대로 연출을 했다.

'택시운전사'는 연출이 소재를 장악하지 못해서 소재에서 발생되는 과잉되는 정서를 방치해버린다. 

'1987'은 소재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강약조절을 잘해서, 큰 역사적 사건을 영화가 어떤 식으로 다뤄야할지에 대해 잘 보여준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일 때 무엇이 미덕일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소재의 좋고나쁨으로 영화가 평가받는다면 기획자가 필요하지 연출자가 왜 필요하겠는가.

'1987'에도 물론 과잉된 부분이 있지만 러닝타임 내내 절제하고 속도감을 조절했기 때문에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소재가 워낙 존재감이 크다 보니, 작위적인 서사나 도구적인 인물들을 걱정했으나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움직이는 인물들이 사건을 자연스럽게운반해준다. 

영화를 보고 특정 배우의 얼굴 대신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것은 영화가 좋은 선택을 했다는 증거다.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선악이 공존하는 얼굴은 배우에게 필수라고 느꼈다.

사람은 양면을 모두 지닌 이에게 끌리게 되어있으니까.

유명배우들이 정말 많이 나오지만 오히려 낯선 배우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많은 이들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사건이다 보니 배우의 두드러진 인상보다는 가장 보편의 얼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많았고 다들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어쩔 수 없이 가장 눈에 튀는 배우는 강동원이다.

강동원이 이한열을 연기함에도 튀는 이유는 그의 얼굴이 너무 잘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극중에서 김태리와 강동원의 연대를 딱히 연애감정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시대에서 광장에 나온 모든 이들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연대했고, 그것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니까.


세상에 필요한 소재를 딱 이정도의 밀도로만 다룰 수 있어도 영화적으로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때그사람들'과 '박하사탕'에 견주어서 말할 수 있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밀도 높게 풀어낸 영화가 또 하나 생겼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영화를 통해서 이 시대를 목격할 때마다, 얼마 전 광장에 많은 이들이 모였던 그 순간이 얼마나 기적에 가까운 연대의 순간이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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