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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귀주 이야기 (秋菊打官司 , The Story Of Qiu Ju , 1992)

대한극장에서 장예모 특별전 마지막으로 본 영화.

오늘부로 드디어 네 편 모두 봤다.

특별전으로 재개봉한 영화를 이렇게 열심히 챙겨본 게 처음이다.

아마 코로나 때문에 그동안 극장에 못 가다가 극장의 즐거움을 오래 느꼈기 때문일까.

 

일주일만에 간 대한극장인데 코로나 때문에 입구에서부터 온도 체크하고 사진 찍고 자동소독기 같은 걸 거쳐서 지나간다.

예매 때는 3관으로 적혀있었는데 상영관이 6관이어서 늦을 뻔 햇다.

다행히 어제 먼저 갔던 분이 자기가 이런 이슈가 있었다고 공유해줘서 다시 확인한 덕에 시간에 맞춰서 들어갔다.

 

여성이 주인공일 때 보통 통념에 있는 여성의 특성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귀주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영화 통틀어서 성별 상관없이 가장 우직하고 상식적인 사람이 귀주다.

'파고'의 프란시스 맥도먼드처럼 '귀주 이야기'의 공리도 만삭으로 나오서 둘이 겹쳐 보이는 장면이 꽤 있었다.

수레에 고추를 가득 담고 고추를 판 돈으로 시에 있는 공안까지 가는 장면은 '매드맥스'가 따로 없었다.

 

시동생과 함께 떠나는 공리의 모습은 로드무비를 연상케하는데, 그 우직함이 웃펐다.

극장 사람들 다들 많이 웃었는데, 곱씹을 수록 불공평한 현실이니까.

 

영화 마지막에 발생한 아이러니는 특히 와닿는 게 많다.

촌장이 마을을 위해 힘써왔다는 게 폭력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나?

그런 식의 해석을 하기 시작하면 세상에는 면죄부가 넘쳐난다.

 

장예모 영화 중 가장 귀엽고 웃을 부분이 많은 작품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 숨겨진 현실은 볼수록 아프다.

게다가 '귀주 이야기' 속 공정하지 못한 세상의 단면들은 여전히 현 사회에서도 발견가능하니까.

 

장예모의 다음 영화를 언제 볼지는 모르곘으나 그의 초기작은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대한극장은 이제 이창동 감독의 작품을 재상영하고, 씨네큐브는 히치콕 감독의 작품을 재상영 중이다.

극장이 다시 좋아졌다는 것만으로도 장예모 감독의 초기작들은 크게 남을 것 같다.

특히 공리의 다양한 표정은 자주 마음 안에서 꺼내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