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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 (Martyrs, 2008)




여태껏 보아온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큼 불편한 영화이다.
약간 고어적 성향을 보이지만 '호스텔'시리즈나 '쏘우'시리즈에 비하면 사실 시각적인 잔인함은 그리 큰 편이 아니다.
다만 영화의 윤리적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주는 정신적인 충격이 크다.

어릴 적에 이유도 모른 채 학대를 받으며 자란 루시라는 소녀가 학대를 받던 곳에서 탈출한다.
탈출한 뒤에 보호시설에서 루시는 안나라는 소녀를 만나고 둘은 친하게 지내며 함께 자란다.
어릴적부터 루시는 계속해서 학대 때문에 생긴 후유증으로 아파하고, 안나는 그런 루시를 돌봐준다.
영화의 스토리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이 영화의 스토리에 대해서 길게 언급을 못하겠는데 영화가 굉장히 극적으로 전개된다.

영화를 보게 되면 느끼겠지만 내용상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진다.
전반부는 사실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스릴러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의 후반부는 전반부보다 훨씬 큰 임팩트를 가지고 있다.
후반부의 윤리적인 메시지가 관객으로 하여금 큰 후유증에 시달리게 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특수분장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특수분장을 담당한 브누아 레스탕은 이 영화 작업이 끝나고 나서 유서도 없이 자살을 했다고 한다.
브누아 레스탕이 이 영화를 보고나서 얼마 안되서 자살했기 때문에 이 영화 때문에 자살했다는 소문도 돌았다고 한다.

프랑스는 왠만한 고어물에 16세 등급을 주고 포르노만 18세 등급을 받는데 이 영화는 18세 등급을 받았다.
분명히 시각적인 잔인함은 여타 다른 고어물보다 덜 함에도 불구하고 18세 등급을 받은 것은 아마 영화 속 메시지가 주는 정신적인 충격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 인터뷰를 보니 '나는 세상이 엿같다고 생각하는데 기분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고 역겨운 행위다'라고 말을 했는데 이 발언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든다.
나도 세상에 대해서 그리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무엇인가 창작을 할 때도 그런 마음을 많이 반영하는 편이다.
무엇인가 즐거운 세상을 표현할 때 그것이 현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이상을 표현하는 느낌이 들어서 표현하고 나서도 공허함을 느낀다.

영화에서 루시 역을 맡은 밀레느 잠파노이는 유명 브랜드인 '크리스챤 디올' 화장품의 메인모델이다.
인터뷰를 보니 80년생인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프랑스 여배우들이 귀여운 역으로 영화 속에서 작은 역으로 출연하는 것보면서 자신은 남들과는 다르게 좀 특이한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해서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고 한다.
화장품 광고의 메인모델이라는 것이 상상이 안될만큼 영화 내내 피와 상처가 범벅된 상태로 출연한다.
영화 카메라 감독은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다가 피범벅이 된 루시로 분장한 밀레느 잠파노이를 보고 기절한 적도 있다고 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영화 속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장면은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를 생각하게 했고, 후반부에 학대 장면은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오렌지'를 생각하게 했다.




Martyrs는 영어로는 순교자라는 뜻이고, 그리스어로는 목격자라고 하는데 이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본다.
영화 속에서 '순교자'는 중요한 키워드이고, 관객은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목격자로서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이 영화의 감독은 신이 없는 세상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신이 없는 지금의 세상은 우리가 지금 몸으로 느끼고 있듯이 끔찍하다.

결국 우리가 이 끔찍한 세상에서 신의 손길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영화 속 두 여주인공의 선택과 일치한다.
요즘 들어서 많이 느끼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의 고통을 초월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고통이라는 것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으며, 처음이나 백번째나 똑같이 아플 뿐이다.

'마터스'를 보고 며칠이 지났는데, 영화 속 잔인했던 장면보다 영화 전체가 주는 메시지가 주는 충격의 여운이 길다.
이 불편함이 쉽게 가실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