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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공기인형 (Air Doll, 2009)



'공기인형'은 고레에다히로카즈 감독과 배두나의 만남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이다.
일본 영화 특유의 정적인 느낌이 강해서 지루한 면도 있고, 공기인형 주변인물들의 에피소드가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난 이 영화의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배두나가 연기한 공기인형 캐릭터는 배두나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의미가 클 것이고, 관객에게도 오랫동안 기억될만큼 임팩트가 컸다.

영화는 공기인형이 어느날 마음을 가지게 된 뒤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노조미는 공기인형이다.
노조미는 어느날 마음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집 주변 비디오가게점원을 좋아하게 되고, 그 비디오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말도 배우고, 자신의 사랑을 키워나간다.

공기인형의 주인을 비롯해서 영화 속에서 공기인형 주변의 인물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무엇인가가 결핍되어있고 고독한 사람들이다.
고레에다히로카즈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현대인의 고독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공기인형의 주변인물들에게도 고독을 드러낼만한 에피소드를 부여하는데, 그 에피소드는 너무 작위적이고 소모적이어서 불필요해보였다.



공기인형에게 바람을 불어넣는 부분과 후반부에 공기인형이 사랑하는 이에게 바람을 불어넣으려 하는 부분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전자의 경우 노출 하나 없이도 관능적인 연출을 보여주고, 후자의 경우 소통의 부재에 대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연출한 장면이라고 본다.
특히 후자의 경우 개인적으로 좀 많이 놀랐다.

영화의 영상 자체가 이와이 슌지의 느낌이 들만큼 밝고 예쁜 톤을 보여준다.
촬영을 담당한 이병빈은 주로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작업하던 사람인데, 카메라워크 자체가 핸드헬드가 주를 이루지만 정적인 느낌이 크다.
미술을 담당한 타네다 요헤이의 경우에는 이와이슌지의 작품과 킬빌의 미술을 담당해서 유명한 이인데,
영화의 미술 자체가 전에 타네다 요헤이가 담당했던 이상일 감독의 '훌라걸스'나 이와이슌지의 '하나와앨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의상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주인공인 배두나의 의상이 인상적이다.
인형으로 나오는 배두나가 마치 진짜 인형처럼 엄청 말라보이게 나오는데, 영화 속에서 배두나가 입은 파스텔톤이나 밝은 계열의 옷이 배두나에게 잘어울리고 의상 자체가 굉장히 예뻤다.



이 영화는 거의 배두나의 원맨쇼이다.
사실 말이 좋아서 공기인형이지 극중에서 공기인형이 섹스돌로 나오기 때문에 배두나의 노출장면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출연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톤 자체가 워낙에 예쁘기 때문에 노출장면조차도 선정적인 느낌이 거의 없었다.

CG없이 공기인형을 연기한 배두나는 마음을 가지게 된 인형이 말을 배워나가고, 사랑에 빠져가는 모습을 잘 연기했다.
배두나가 나온 영화를 많이 보았지만, 배두나가 이렇게 예뻐보이는 영화도 없을 것이다.
어느 평론가가 이 영화에 대해서 평한 대로 이 영화는 배두나의 아름다운 시절이 기록된 영화이기도 한다.
배두나가 출연한 또 다른 일본영화인 '린다린다린다'보다 이 영화가 모든 면에서 더 좋았다.

오다기리죠는 거의 카메오로 나오는데, 오다기리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가 자신의 출연분량을 떠나서 좋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하는 열정이 보여서 좋다.
공기인형의 주인으로 등장하는 이타오이츠지는 마음을 가지게 된 공기인형과 마주하게 되는 장면에서 배두나와의 호흡이 별로 안좋아보였는데 그 장면을 제외하고는 좋았다.
이타오이츠지의 이미지는 '유레루'에 출연했던 배우 카가와 테루유키와 비슷해 보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공기인형이의 몸에 바람이 빠졌을 때, 공기인형이 좋아하는 비디오가게점원이 공기인형에게 바람을 불어넣어주는 부분이다.
내 몸이 사랑하는 이의 숨결로 채워져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공기인형의 주인은 마음을 가지게 된 공기인형을 마주하자 말한다.
그냥 예전처럼 마음이 없는 섹스돌로 돌아오면 안되겠냐고.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마음을 가지게 된 공기인형에게 축하의 인사의 건네기에는, 사람들과의 소통 속에서 공기인형이 자기 자신의 무게보다도 훨씬 무거운 상처들을 받을 것만 같아서 걱정스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