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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홀리 모터스 (Holy Motors, 2012)

 

 

 

진짜 나에 대해 설명하라고 할 때 굉장히 난감하다.

내가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다자이오사무의 '인간실격'에 나온 것처럼 익살을 부리며 사는 것은 아닐까.

그런 내게 진짜 내가 뭐냐고 물으면 난 가장 먼저 떠오른 역할에 대해 말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는 말은 지금의 내가 이런 역할을 제일 능숙하게 소화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이들은 배우이다.

모두들 역할극을 하고 있다.

누군가의 부모 혹은 자식 혹은 상사 혹은 친구 혹은 지나가는 행인 혹은 첫사랑 등등.

태어나자마자 부여받은 역할도 있고, 따내기 정말 힘든 역할도 있다.

 

관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역할극을 통해 사람을 만난다.

어떤 역할을 가지고 어떤 현장에서 만났냐에 따라 관계가 크게 달라지곤 한다.

 

지금도 우리는 역할에 충실하게 연기하고 있다.

카메라 대신 일상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레오까락스 감독을 별로 안 좋아한다.

'퐁네프의 연인들'이나 '나쁜피'는 주변에서 추천해줘서 봤지만 별 감흥없었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김기덕 감독의 초기작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옴니버스영화인 '도쿄!'에서는 봉준호와 미셸공드리보다도 레오까락스의 단편이 더 좋았다.

그리고 '홀리 모터스'는 레오까락스의 최고작이다.

 

레오까락스의 페르소나인 드니라방이 '홀리 모터스'에도 등장한다.

레오까락스의 전작들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항상 드니라방의 연기만은 굉장하다고 느꼈다.

배우의 기본은 몸짓이라고 생각하는데, 드니라방은 몸짓만으로도 관객들에게 감흥을 일으키는 배우이다.

'홀리모터스'는 역할극에 대한 이야기이고 드니라방은 최적의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연극무대에서의 그는 얼마나 어마어마한 몸짓을 보여줄까.

 

사실 드니라방 원톱영화라고 할 수 있기에 조연들의 비중이 크지는 않다.

카일리미노그는 내게 가수로 더 익숙한데, 그녀의 곡인 'can't get you out of my head'가 딸의 파티장면에 나온 것이 위트있게 느껴졌다.

리무진 기사인 에디뜨 스꼽과 모델로 등장하는 에바 멘데스의 연기도 좋았다.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굉장히 다양한 상징들이 존재한다.

알렝레네의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와 비슷한 맥락이 있다.

사실 알렝레네의 영화는 내게 너무 난해해서 해석을 거의 포기한 채 봤었다.

그에 비해 '홀리모터스'는 엄청나게 난해한 영화는 아니다.

 

레오까락스는 작가가 글로 소통하듯 자신은 영화로 소통할 수 밖에 없어서 영화를 만드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영화를 보고나서 말로 다시 설명해달라고 해서 난처하다고 한다.

소통에 있어서 언어에 많이 의존하는 내게 레오까락스의 이 말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영화가 소통의 길인 이들에게 영화란 얼마나 절박한 것일까.

 

엔딩크레딧에 예카테리나 고루베바의 사진이 나온다.

레오까락스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가장 혹평을 받았떤 '폴라X'의 여자주인공이자 레오까락스의 연인이었던 배우이다.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영화 초반에는 레오까락스가 직접 배우로 등장하며 이 영화가 결국 자전적인 영화임을 암시한다.

극장에서 졸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영화 같은 삶을 살아온 감독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죽음을 앞두고 사랑을 말하는 역할, 옛 연인과 만나서 사랑에 대해 말하지만 옛 연인이 죽는 것을 목격하는 역할 등 다양한 역할들 모두 결국 레오까락스의 이야기가 아닐까.

이러한 일을 겪은 레오까락스는 정상적인 삶을 이어나갈 수 없기에 영화 속 두 인물의 마지막 장면을 오랑우탄과 살거나, 역할을 끝내고 가면을 쓰고 퇴근하는 것으로 설정한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서는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나'라는 역할로 살아가는 것을 형벌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삶을 꿈꾸며 '나'라는 사람을 연기해나간다.

어쩌면 꿈을 꾸는 것조차도 역할극에 적힌 지문일지도 모른다.

'나'라는 배역을 형벌로 여기지 않고 안주한 채, 영화 오프닝의 관객들처럼 새로운 세계에 대해 무관심하게 구는 것에 대해 레오까락스는 굉장히 큰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죽음조차 연기가 되어서 겁이 없는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역할극을 숙명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역할극을 하는 우리들에게 진짜 죽음은 더 이상 소화할 연기가 없을 때가 아닐까.

수많은 인정투쟁도 결국 하나의 배역을 차지하고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레오까락스는 말했다.

무성영화 시절 무르나우의 영화를 보면 배우를 바라보는 카메라에서 신의 눈길이 느껴지지만, 요즘은 영상이 넘쳐나고 그 영상들 속에서 신의 눈길을 느낄 수 없다고,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이를 복원해내고 싶다고.

 

신의 눈길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한다.

레오까락스가 어떤 영화를 만드냐보다 내가 어떤 시선을 가지고 사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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