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vie

박쥐 (Thirst, 2009)




시간이 없다고 말하더라도 사람이 의지가 있으면 어떻게든 시간이 생긴다.
그리고 난 영화 '박쥐' 티저영상과 포스터를 보고 오랜만에 황홀함을 느꼈다.
한동안 영화를 안봐서 그래서일까.
조상경의 의상과 류성희의 미술, 그리고 송강호와 김옥빈의 연기.
그리고 내가 영화 속에서 만나게 될 박찬욱의 연출과 정정훈의 촬영, 조영욱의 음악까지.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자기 전에 항상 영화티저영상을 보았다.
그렇게 기대하던 중 문득 달력을 보았다.
석가탄신일이었다.
나는 그 날 절 대신에 광화문 씨네큐브에 갔다.




일단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일까.
솔직히 실망이 좀 컸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 번 보고 평가하기에는 영화 속에 흥미로운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아마 다시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내가 실망한 부분은 시나리오다.
후반부에 엔딩부분도 생각보다 너무 친절해서 놀라웠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친절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해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거의 없었다.

이 영화의 매력은 오히려 스토리 외적인 요소들이다.
내가 기대한 조상경의 의상과 류성희의 미술과 정정훈의 촬영, 조영욱의 음악까지.
김지운과 이명세 감독 모두 굉장히 스타일리시한 감독이지만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미술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감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시각적인 만족감이 큰 영화이다.

내가 '놈놈놈'을 괜찮게 본 이유는 애초에 시나리오를 기대하지 않고 시각적 즐거움만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박쥐'는 내가 박찬욱에게 영상과 각본이라는 두 가지 모두를 요구해서 실망이 큰 것 같다.
아무튼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영화를 몇 번 더 본 뒤에 해야할 것 같다.




신하균은 짧은 시간 출연하지만 굉장히 소화하기 어려웠을 캐릭터를 잘 소화했고,
송강호에게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사치스럽다고 생각한다.
이번 칸영화제에서 '박쥐'가 수상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상은 남우주연상이라고 생각될만큼 송강호의 연기는 거의 무결점이었다.

김해숙은 국민어머니의 이미지가 아닌 표독스럽고 차가운 이미지로 나왔는데도 어색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내가 '형사'를 본 이후로 팬이 된 송영창을 비롯해서 오달수와 박인환 등의 조연들의 연기도 다 좋았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옥빈이다.
그녀의 연기는 영화 속에서 꼭 홍콩코미디 영화 속에서 여배우들이 오바해서 연기하는 것을 연상시킬만큼 전체적으로 과잉되어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송강호가 절제된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두 사람의 밸런스가 잘맞아서 김옥빈의 연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녀의 여태까지의 출연작과 비교했을 때 이 영화는 큰 터닝포인트이다.
영화 '빈집' 이후의 재희나 '사마리아' 이후의 곽지민 등의 배우는 영화제에서도 주목받으며 자신의 인생에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한 뒤에
인상깊은 영화에 출연하지 못했다.

미인대회 출신으로 홍콩영화계에서 소모적으로 사용된 장만옥이 일정시점 이후부터 좋은 시나리오를 보는 눈을 갖추게 되어서 연기파배우가 된 것처럼
김옥빈도 시나리오를 보는 눈을 길러서 연기파 여배우로 거듭나거나,
혹은 이 영화 이후로 또 다시 이전처럼 그저 예쁘장하고 작품을 고르는 능력이 떨어지는 배우로 남겨질 수 있다.





난 영화에 참여한 사람 중에서 김옥빈의 이후의 행보가 가장 궁금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안밖으로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의외였던 참여진은 김옥빈이었으니까.
배우와 스텝 모두 박찬욱과 호흡을 맞춰보았거나 영화계의 실력파들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전혀 박찬욱스럽지 않아보였던 그녀.
과연 김옥빈은 어떤 배우로 거듭나게 될까.
아마 김옥빈의 차기작이 그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P.S 
누군가가 내게 이 영화의 장르를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블랙로맨틱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