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Mother, 2009)

즐겁게 해주고 싶은 사람과 이 영화를 보았다.
역시 봉준호답게 영화는 한없이 우울하다.
함께 영화를 본 사람을 즐겁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여러모로 흥미로운 영화였다.

극장에서 나온 뒤에 영화 속 장면들을 생각해보며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봉준호 감독의 최고작은 무엇일까?
'박쥐'를 본 뒤에도 여전히 나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복수는 나의 것'이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경우 많은 고민을 해야될 것 같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 모두 두 번째 보았을 때 훨씬 더 많은 것을 느꼈다.
확실한 것은 '마더'는 한 번 보고 판단할만한 영화가 아니다.
'마더'를 본 뒤에 극장에서 나오면서 든 확신은 봉준호는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영화로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장점은 아무 생각없이 즐겨도 충분히 영화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영화 속 장면들을 조금만 더 곱씹으면 그 속에 숨겨진 여러가지 의미가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처음 보았을 때보다 그 이후에 보았을 때 더 많은 것이 보인다.

'플라다스의 개'는 강아지를, '살인의 추억'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괴물'은 한강에 나타난 괴물을 소재로 해서 사회를 비판한 영화이다.
'마더'는 모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이며, 영화 속에 에피소드들 중에서는 사회의 부조리를 담고 있는 장면이 많지만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모성애의 역설적인 면을 보여준다.
엄마와 아들이라는 가장 가까운 단위의 관계 속에 일어나는 역설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서 원빈과 진구는 조연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완벽하게 김혜자를 위한 영화이다.
봉준호 감독은 예전부터 김혜자와 작업하길 원해서 지속적으로 김혜자에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고,
그 당시의 김혜자는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한다.
아무튼 봉준호의 오랜 바램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 속에서 김혜자는 그동안 드라마 속에서 보여준 따뜻한 모성애와는 다른 차원의 모성애를 너무나 잘 소화해냈다.
원빈과 진구의 경우에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는 작품에 출연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 중에 영화의 배경으로 어울릴 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서 연출부가 전국을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원빈이 주차장으로 가는 장면에서 원빈이 주차장으로 가는 길과 주차장은 서로 다른 지역이라고 한다.
디테일을 중시하는 봉준호답게 영화 속 배경은 류성희 미술감독의 미술과 함께 영화에 많은 힘을 더해준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병우가 음악을 담당했고, 류성희가 미술을 담당했지만,
촬영은 그동안 함께 해온 김형구 촬영감독이 아닌 '태극기 휘날리며'로 유명한 홍경표 촬영감독이다.
게다가 홍경표 촬영감독의 스틸컷이 마음에 들었던 광고팀에서 영화의 포스터사진도 홍경표 촬영감독에게 맡기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마더'가 그동안 보아온 봉준호 감독의 작품 중 촬영이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살인의 추억'의 라스트씬은 송강호의 클로즈업이다.
아마 감독은 영화 속 배경이 되는 그 때 그 시절과 그 사건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강렬한 클로즈업으로 그런 라스트씬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반면에 '마더'의 라스트씬은 춤추는 이들의 그림자들이다.
어쩌면 감독은 이번에는 '기억하라'보다는 '잊어라'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김혜자, 아니 이 시대의 어머니들은 무엇인가를 잊어버리고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