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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낮술 (Daytime Drinking, 2008)




단편영화 스텝할 당시 함께 연출부 생활하며 친해진,
내가 너무나 의지하는 고병장님과 오랜만에 만났다.
원래 고병장님을 보기 전에 아침에 '낮술'을 보고가려고 했는데 늦게 일어나서 패스.
고병장님과 밥 먹을 때 역시나 영화 이야기하기에 바빴고,
'영화나 보러 갈까?'라는 대화가 오가다가 '낮술'을 보기로 결정.

'낮술'이 상영하고 있던 극장은 안국동에 있는 '씨네코드선재'
'씨네코드선재'는 일단 생각보다 잘 꾸며져 있었다.
다만 스크린이 너무 작다는 게 흠이다.
코엑스 메가박스의 스크린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작았다.
그래도 독립영화를 상영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극장이다.
관객은 20명 정도 있었고, 예상 외로 대부분 여성관객이었다.
극장 안 웃음소리도 다 여성관객의 몫이었다.
여성관객의 리액션이 너무 좋아서 내가 감독이라면 참 뿌듯하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노영석 감독은 이영화가 데뷔작이고, 영화의 예산은 1000만원.
내가 연출부 생활한 단편영화가 최종편집했을 때 30분짜리 영화인데 예산은 400~500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하다.
노영석 감독은 제작비의 대부분을 술값으로 썼다고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술은 계속 사주마!'라는 말과 함께.

일단 영화를 보며 대부분의 관객들은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을 떠올릴 것이다.
여행지를 배경으로, 인물끼리 갈등하고, 여자와 술이 화두가 되는 영화이다.

그런데 난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보다 이 영화가 훨씬 재미있다.
난 '해변의 여인'의 앞부분만 좋아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웃었다.
특히 후반부에서는 거의 박장대소하면서 보았다.
극장에서 그렇게 크게 웃어본 적이 처음이다.

독립영화 중에 예술영화로서의 무게감을 지니려 하다가 무게도 없고, 메세지도 없고,
겉멋만 남아있는 영화들이 정말 많다.
그에 비해서 '낮술'은 일상적인 내용을 즐겁게 풀어나간다.
한 때는 폼 잡는 독립영화를 멋지다고 생각했는 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쥐뿔도 없는 데 폼 잡는 영화의 꼴이 우스운 것 같다.
'낮술'의 무게감이 가볍다 할 지라도 폼 잡는 독립영화들보다 백 배는 낫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에도 여자친구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는 남자주인공.
그는 기분전환 겸 여행지에 와서 만나게 된 혼자 여행 온 다른 여자를 보며 금세 관심을 보이며, 입까지 맞춘다.
자신의 옛여자친구와 사귀게 된 친구에게 가장 먼저 '잤냐?'라고 묻고,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신과는 잔 적 없는 데 왜 너와는 잤냐라며 옛여자친구에 대해서 화를 내며 푸념한다.
여행와서 고생만 했기에 집에 가자고 결심한 남자주인공은 영화 마지막에 혼자 여행 온 아리따운 여인이 강릉으로 간다는 말에 또 다시 흔들린다.
영화는 술이라는 소재와 함께 남성의 치졸함을 보여준다.
여성 관객들의 웃음은 통쾌함에서 나오고, 남성 관객들의 웃음은 민망함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들만큼.

캐릭터 설정도 정말 좋았다.
사실 이런 저예산 영화에서 영화를 이끌어가 수 있는 힘은 순수한 서사와 캐릭터의 힘일 것이다.
특히 '란희' 캐릭터는 최고.
정말 뻔뻔한 '란희'라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 이란희 배우는 이 영화의 조감독이기도 하다.
아무튼 '란희' 덕분에 많이 웃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웃은 부분은 영화 끝날 때 쯤에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이 '지혜'라는 이름으로 오해한 부분이다.
나 자신이 민망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는 데, 그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서 박장대소했달까나.

영화를 보고 큰 메세지를 얻거나 멋진 비쥬얼을 원한다면 이 영화는 비추천이다.
가볍지만 많이 웃을 수 있는 영화를 원한다면 정말 추천이다.
(물론 취향에 따라서 유머 코드가 안맞는 관객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것은 영화표값보다 훨씬 더 값진 웃음을 지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 우울한 사람들 있으면 함께 가서 보고 싶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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