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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렛미인 (Let The Right One In, 2008)




학군단 훈련 전에 '더폴'과 '렛미인'중에서 무엇을 볼까 갈등하다가
'렛미인'이 조용히 흥행중이라서 '렛미인'은 훈련이 끝나고나도 상영하고 있을 것 같은데
'더폴'은 금방 상영이 끝날 것 같아서 '더폴'을 보았다.
하지만 훈련을 갔다오고나서보니 '더폴'은 앞으로도 꽤나 오래 상영될 기세인데 '렛미인'은 상영할 날이 며칠 안남아 있었다.
그리고 '렛미인'을 본 지금, '렛미인'이 '더폴'보다 더 많은 감동을 주었다.

아무튼 28일이 스폰지하우스 중앙에서 '렛미인'이 마지막으로 상영하는 날이어서
오후에 부시시 일어나서 상영시간 확인하고나서 모자 푹 뒤집어쓰고 바로 극장으로 갔다.




잉마르 베리만이라는 거장감독으로 대변되는, 1년에 20편이라는 굉장히 적은 수의 영화가 제작되고 있는 스웨덴의 영화이며, 뱀파이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뱀파이어 영화의 관습적인 모습들이 전혀 없는 영화인 렛미인.
난 공포영화나 괴수영화를 좋아하지만 뱀파이어 영화는 이번에 처음 보았고,
스웨덴 영화는 철학입문 수업 시간에 본 잉마르 베리만 '제7의 봉인' 이후로 두 번째로 본 영화이다.

스웨덴의 설원.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을 연상시키는 아날로그 필름의 질감.
하얀 피부와 노란 머리의 약해보이는 소년.
그리고 마치 몇백년의 기억을 간직한 것처럼 슬픈 눈을 가진 소녀.
사실 이 영화는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빌린 소년과 소녀의 성장영화이며 멜로영화이다.




왕따인 소년은 집 앞에서 우연히 한 소녀를 만난다.
소녀와 친해진 소년. 하지만 알고보니 그 소녀는 뱀파이어.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처럼 간단하다.

영화 속에서 뱀파이어가 등장한다면 등장할법한 화려한 액션과 특수효과는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속 뱀파이어 소녀는 그냥 사랑과 소통을 갈망하는 소녀일 뿐, 흡혈은 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뱀파이어 영화이기 이전에 사랑영화인 이 영화는 공포보다 슬픔에 가깝고, 혐오스럽기보다는 아름답다.

영화를 본 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영화 속 이미지가 계속해서 맴돈다.
소통을 하고자 하는 뱀파이어 소녀의 눈빛과 소년의 삐쭉거리는 입술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돈다.
영화 속에서 소년과 소녀가 포옹하는 장면은 내가 그동안 보아온 어떠한 러브씬보다 아름답다.




소녀는 소년에게 말한다.
자신이 평범한 소녀가 아니어도 자신을 좋아해줄 것이냐고.
소년은 당연하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소녀는 뱀파이어는 초대받지 않은 인간의 방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퉁명스럽게 초대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고 묻는 소년을 보며
소녀는 대답 대신에 자신의 몸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아낸다.
소녀를 보며 소년은 '그래, 알았어. 초대할게'라고 다급하게 말한 뒤 소녀를 안아준다.

팔이 잘리고, 머리에서 피가 쏟아지는 강렬한 장면보다
소년과 소녀가 조용조용하게 소통하는 장면이 더 깊게 가슴에 남는다.
영화 속 소년과 소녀는 내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