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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이야기

멋진 하루




1.

10월 4일 토요일.
점심에 친구랑 옷사러 갔다가 맘에 드는 옷이 없어서 그냥 집에 돌아왔다.
같이 갔던 친구는 여자친구와 불꽃놀이를 보러간다며 여의도로 향했다.

저녁에 빈둥거리리며 집에 있다가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불꽃놀이에 함께 가자고 했다.
집에서 빈둥거리니 차라리 불꽃놀이나 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여의나루역으로 향했다.

정말 여의나루역은 지옥이었다.
발 디딜 틈이 없는 지하철역.
여의나루역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예 정차를 못하고 다음역인 여의도역에서 내렸다.
안내방송을 못들은 나는 분명히 여의나루역에서 내렸는데 왜 여의도역일까라며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여의도역에서 여의나루역까지 평소였으면 짧았을 거리지만,
선배들에게 걸어가는 길은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가만히 있어도 밀려서 앞으로 가는 느낌이 들만큼 많은 인파들.
전쟁 때 피난가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라고 느껴질만큼 정말 너무나 많은 사람들.

어렵게 도착해서 돗자리 깔고 앉아서 불꽃놀이를 보았다.
어쩜 그리도 예쁘던지.
고생해서 온 보람이 있었다.
짧은 불꽃놀이가 끝난 뒤 사람들이 좀 빠지고 난 뒤에 집에 가려고 했다.
30분 정도 지나서 지하철역으로 향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많았다.

불꽃놀이를 보기 전에는 설레임이라도 머금고 있으니 인파가 많아도 참을만했는데,
불꽃놀이를 이미 다 본 상태여서 그런지 많은 인파들을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정말 내가 평생동안 했던 사람구경을 몇 분만에 다 한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지하철역에 도착.
집에 갈 것인가 밤을 샐 것인가 고민하던 끝에 선배들과 밤을 새기로 결정.

2.

일단 심야영화를 보기로 했다.
서울극장으로 향했지만 이미 모든 영화의 상영이 종료된 상태.
건대 롯데시네마에 전화를 해보니 영화가 상영중이라고 했지만 종로에서 너무 멀었다.
함께 갔던 누나가 메가박스에서 일하시는데 메가박스에서는 늦게까지 영화를 상영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신촌 메가박스로 갔다.
12시쯤 메가박스에 도착해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니 '모던보이','멋진하루','더클럽'이 남아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멋진하루'가 보고 싶어서 보자고 했다.

3.

내가 12시에서 1시 사이에 유난히 잠이 많은 편이다.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보면서 잤다.
'멋진하루'의 3분의 1 정도는 졸면서 보았다.
덕분에 영화를 보고나서도 블로그에 포스팅은 못하게 생겼다.
나중에 DVD로 출시되면 잠에서 깬 상태로 다시 보아야겠다.

확실한 것은 하정우와 전도연의 연기는 정말 반짝반짝 빛난다.
하정우의 능글맞은 연기는 그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고, 전도연의 새침한 연기는 지상 최강이다.
하정우의 캐릭터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4.

방학 때 단편영화 스텝을 할 당시에 항상 신촌에서 모였다.
덕분에 우리동네의 지리조차 모르는 내가 방학에 신촌에서 거의 상주하다시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가야'라는 술집이다.
그곳에 참 많이 가봤지만 항상 사람이 많아서 다른 술집에 갔었다.

새벽에 영화를 본 뒤에 '가야'에 갔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가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
분위기는 신촌에 있는 또 다른 술집인 '몽환'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야'가 훨씬 좋았다.
'몽환'에서 사람들이 물담배 피는 모습은 꼭 마약하는 것 같다.

이제 곧 군대를 가는 형, 항상 먼저 챙겨주시는 누나.
오랜만에 속깊은 이야기를 했다.
선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고민도 많이 사라진 것 같았다.

4.

'가야'는 5시까지만 영업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첫차를 타고 갔다.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집에 들어갔다.

불꽃놀이, 심야영화, 담소.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조는 바람에 선배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잘 안난다.
다만 선배와 내가 했던 이야기 중에 서로 웃으며 했던 이야기는 기억에 난다.
'오늘 너무 멋진 하루였어요.'

불꽃놀이를 본 시간보다 사람들에 치여있던 시간이 더 길었고,
영화를 본 시간보다 졸았던 시간이 더 길엇고, 한숨도 못자고 지새운 밤이지만
그래도 멋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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