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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파고 (Fargo , 1996)

 

예전에 별 감흥 없이 본 영화였는데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봤을 때 좋은 작품들이 있다.

고등학생일 때는 허진호 감독의 멜로가 전혀 공감이 안 되어서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를 거의 10번 가까이 봤다.

물론 공감에는 실패했다.

영화 속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했던 건 영화를 보는 눈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경험이라는 걸, 훗날 몇 번의 연애 뒤에 허진호 감독의 멜로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파고'도 거의 10년 만에 다시 봤다.

걸작이라는 평가와 달리 내게는 그저 그런 스릴러였다.

다시 본 '파고'는 명백한 걸작으로 보였다.

영화를 보기 전에 한 심리검사에서 나의 공감점수가 낮게 나와서, 괜한 죄책감을 가지고 봐서 그런지 영화가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데어 윌 비 블러드'도 다시 봤을 때는 걸작이라고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보면서 졸았던 게 문제였지만.

 

임신한 형사는 사건을 쫓고 마지막에 이르러서 말한다.

돈보다 생명이 중요해요.

그걸 모르는 이들이 있을까.

당연해보이는 게 무색해지는 세계는 코엔 형제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풍경이다.

 

윌리암 h머시는 '매그놀리아'의 어릴 적 퀴즈천재 캐릭터와 겹쳐보이면서, 소시민처럼 보이지만 삐뚤어진 마음을 품은 이의 표정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찌질한 성격과 악한 의도가 섞였을 때의 표정이 궁금하다면 그의 얼굴을 보면 된다.

스티브 부세미는 윌리암 h머시와 비슷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따라 다른 삶을 살게 될 뿐.

두 사람이 함께 나올 때는 악은 특이한 속성이 아니라 보편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최고 연기는 '쓰리 빌보드'라고 생각하는데, '파고'는 전혀 다른 결을 가졌다. 

'쓰리 빌보드'는 세상의 질서가 구원해주지 않는 이의 쓸쓸한 여정이라면, '파고'는 어떻게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이가 목격하는 어두운 세상의 이야기다.

'쓰리 빌보드'가 가장 최근에 본 표정이라서 그런지, 서글서글한 표정의 프란시스 맥도맨드를 보며 낯선 동시에 놀랍다고 느꼈다.

서로 다른 세계를 연기할 수 있다는 건 여러모로 놀라운 일이다.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존 캐럴 린치는 '조디악'의 유력 용의자로 나왔던 배우라서 그런지, 두 번째 보는데도 사연 있는 캐릭터처럼 보였다.

스티브 부세미의 동료로 나오는 피터 스토메어가 '어둠 속의 댄서'에서 뷔욕을 짝사랑하는 이로 나왔다는 건 필모그래피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 배우가 그 배우였다니.

 

돈보다 생명이 중요해요.

누구나 아는 말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안에서 어떤 일을 해도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마치 '빅쇼트'에서 주가 하락이 얼마나 많은 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살인이 아니어도 세상은 늘 죽음의 기운과 함께 돌아가고 있다.

 

영화 마지막에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남편의 그림이 저렴한 우편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남편은 경쟁자의 그림은 비싼 우편에 들어간다고 부러워하고,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오히려 저렴한 우편을 더 많이 쓸 거라면서 격려한다.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맛있는 걸 챙겨먹기 위해 노력하고 늘 웃으려고 하는 편이다.

어떻게든 긍정적인 부분과 행복을 찾아다니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이 세상은 견디기 힘들지 않을까.

 

세상을 냉소하고 그 안에서 악착 같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보여서 그런지, 오히려 체념 속 마음 편해지는 그런 편안함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다시 보길 잘했다.

세상은 어차피 안 좋을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