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vie

일루셔니스트 (The Illusionist, 2010)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동화와 잔혹동화 중에서 무엇을 보여주어야할까.
어차피 알게될 현실의 잔혹한 면을 미리 알려주어야할까, 아니면 잔혹한 세상임에도 가지고 살 희망이 될 세상의 아름다운 면을 보여주어야할까.

한 가난한 마술사가 전국을 오가면서 마술쇼를 한다.
마술사의 공연을 보고 소녀는 마술에 매혹된다.
소녀의 눈에 마술사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결국 소녀는 마술사를 따라가게 된다.
소녀는 마술사를 따라다니면서 마술로 구두와 옷들을 사달라고 한다.
마술사는 소녀에게 구두와 옷을 가져다준다.
소녀는 모른다.
소녀의 손에 쥐어진 마술사가 만들어준 구두와 옷들은 마술이 아닌 마술사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산 것임을.

정적이며 어디선가 많이 보았을법한 내용에다가 대사가 거의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뭔가 발랄하고 밝은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을 기대할지도 모르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굉장히 우울하고 현실적이다.
아마 어른과 아이가 손잡고 함께 갔다면 아이는 잠이 들고 어른은 울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마술사와 소녀의 관계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와 가장 가깝다.
어릴적 자식의 눈에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어줄 수 있는 마술사가 아니던가.
아버지는 그런 딸의 앞에서 마술을 부리고 뒷편에서는 묵묵히 마술을 준비한다.
그 마술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요구되는지는 아마 자식이 자라서 부모가 된 그 날에서야 알게 될 것이다.

영화 속 소녀와 마술사의 관계를 보면서 소녀의 태도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술사에게 계속 무엇인가를 가지고 싶다고 하는 소녀의 태도가 야속하면서도 그런 소녀의 순수함에 대해서 차마 욕을 할 수는 없다.
소녀의 환상을 깨는 것은 마술사에게 옳은 일이 아닐테니 말이다.

마술사에게 있어서 소녀는 삶의 희망이고, 소녀는 아직 세상에 대해 잘 모르기에 마술사가 어떤 고생을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마술사 또한 소녀에게 자신이 힘들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마술사에게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마술을 하는 이로서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 소녀는 삶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어린 시절 마술사가 보여준 그 마술의 의미를 뒤늦게 깨닫고 많은 슬픔과 고마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소녀가 평생 마술의 현실을 모른 채 살아간다면 그것이 축복일지 힘든 삶을 의미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소녀는 세상으로부터 불친절하게 현실에 대해서 배울 것이다.
마치 동전 하나로 세상에 살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배워나가는 소녀처럼 말이다.

내게 있어서 가장 슬픈 순간은 끝이 뻔히 보이는 행복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행복한 광경이 깨질 것을 생각하며 스크린에 펼쳐진 행복한 광경을 보며 슬퍼한다.
희망고문은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내게는 견디기 힘들다.

한 정신과 의사가 상담을 받으러 온 우울증 환자에게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면 좀 괜찮아진다고 말했는데, 알고보니 그 환자가 찰리 채플린이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마술을 보여주는 마술사의 초라한 현실은 실제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꿈과 현실의 단면과 비슷하다.

3D로 개봉한 '트랜스포머'보다 2D로 만든 셀애니메이션인 '일루셔니스트'를 선택한 것이 내게는 더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정적이고 우울한 이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마 울지 않고 버티는 것이 힘들 것이다.
마술사가 남긴 쪽지 속 그 말을 보면서 떠오르는 이가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이 자신이 가장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를 위해서 마술을 부리고 있는 이들에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내가 지금 깨지지 않기를 바라며 지켜보고 있는 마술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 이렇게 슬픈 일이 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