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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동주 (DongJu; The Portrait of A Poet , 2015)


시가 어려운 세상이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시가 시로 불리기도 한다.

언어 자체를 감각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한눈에 읽을 수 없는 시는 당황스럽다.


내게 최고의 시는 쉬운 시다.

시를 전공했음에도 시를 더 이상 쓸 수 없다고 느낀 이유는 오히려 전공이 된 이후로 쉬운 시는 쉽다고 비난 받고, 내가 무슨 말을 쓴지도 모르는 아무말 대잔치의 시가 칭찬을 받을 때가 있어서다.

교과서에 있는 시들을 보면서 시를 배웠고, 여전히 그 시들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윤동주의 '서시'는 가장 아름다운 시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인데 그 안에 감정은 촘촘하게 박혀있다.


윤동주의 생애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았다.

송몽규라는 사람이 그의 옆에 있었기에 그가 더 많은 자극을 받았음을 '동주'를 본 뒤에야 알았다.

송몽규와 윤동주의 관계는 흥미롭다.

질투와 동지애가 섞인 관계.

윤동주에게서 질투의 정서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더 좋았다.


시가 삽입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겠지만, 형무소 밖 별을 클로즈업하거나 시가 노골적으로 삽입된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의 시를 귀로 듣기보다 읽는 데 익숙해서 그럴 지도 모른다.

파블로 라라인의 '네루다'에서도 글의 일부가 나레이션으로 읽힐 때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원래 시는 말로 전해지던 것이었을 텐데, 내가 읽는 데 너무 익숙해진 걸까.

시를 읊어본 건 교복을 벗은 뒤로 없는 것 같다.


강하늘 배우는 기본적으로 슬픔을 머금고 있다.

'좋아해줘'는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은 영화이지만 강하늘 배우가 만든 장면들에서는 감정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목소리가 좋은 배우인데, 다만 동주의 엔딩크레딧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노래는 따로 듣긴 좋아도 영화의 마지막에 감정이 쌓인 뒤에 들으니 오히려 윤동주였던 배우가 갑자기 영화 밖의 배우로 바뀐 느낌이라 아쉬웠다.

박정민 배우는 '파수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순간의 힘이 있다.

분명 윤동주에 대한 영화임에도 송몽규가 계속 기억에 남는 걸 보니 이건 전적으로 그의 힘일 거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다시 들춰보기보단 갑자기 떠오르면 그저 기억을 더듬거리는 정도였다.

책장 구석에 놓여있을 그의 시집을 다시 봐야겠다고 느껴진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꽤 오래 기억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