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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Nobody’s Daughter Haewon , 2012) 홍상수 영화에 대해서 말할 때 제일 조심스럽고 힘들다. 그저 '좋았다'라는 말만 뱉을 뿐. 진짜 진실은 없고, 서로 진실이고 싶은 것을 믿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진실은 없고, 서로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에 대해 말하는데 소통이 되고 있는게 참 신기하다. 해원은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결국 모두 다 알게 된다고 말하지만, 난 아직도 이 영화의 비밀을 잘 모르겠다.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비밀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이 영화가 정은채라는 배우를 위한 영화라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해서 말 할 수 없다. 해원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녀의 며칠을 지켜보고, 그녀의 꿈까지 봐버렸지만 쉽게 말 한 마디 할 수 없다. 아마 홍상수가 만들어낸 수많은 인물들에게 난 그 어떤 .. 더보기
북촌방향 (The Day He Arrives, 2011) 항상 의문이다. 난 '해변의 여인'부터 시작해서 홍상수의 영화를 보았다. 점점 그의 영화가 좋아졌다. 내가 나이를 먹는 것인지, 속물이 되어가는 것인지, 영화를 자세히 보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홍상수 영화를 재미있게 본다는 것이 내게는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왠지 단숨에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가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평론가들에게도 홍상수의 영화는 좋은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씨네21에서 홍상수 영화를 보고나서 그의 영화에 대한 평론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좋은 텍스트인만큼 좋은 평론글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내게 홍상수는 항상 우연을 말하는 감독이다. 개연성 대신 우연으로 묶인 이야기, 아니 이야기라고 하기도 모호하다. 서사보다는 정서로 진행된.. 더보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뒤늦게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을 보게 되었다. 구효서의 '낯선 여름'이 원작 소설인데 그의 데뷔작은 그의 최근작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과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 나 자신에게서 보아온 모습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서 보아온 모습도, 홍상수의 카메라 안에서는 왜 이렇게 신비롭게 보이는걸까. 위선적인 이들의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일까. 어른이 되었을 때, 연애를 하게 되었을 때, 누군가와 헤어졌을 때, 큰 상처를 입었을 때, 무엇인가 세상에 한 발 디딜 때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의 면면을 접할 때마다 내게 다가오는 홍상수의 의미가 바뀌어감을 느낀다. 내가 그의 영화를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보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그의 데뷔작이 나온 시기에 어른이었다면 어땠을까. 더보기
어떤 방문 - 첩첩산중 '어떤 방문'이라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든 세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중에서 홍상수가 연출한 '첩첩산중'만 보았다. 출연진은 '옥희의 영화'와 동일하게 정유미,문성근,이선균이 등장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작가 김연수가 등장했었는데, '첩첩산중'에는 작가 은희경이 등장한다. 은희경은 참으로 도도하게 나온다. 중편이지만 홍상수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여전히 그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하고 웃게 한다. 정유미가 길에서 통화하는 부분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만큼 좋았다. 정유미라는 배우가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길에서 혼자 통화하다고 혼자 주저앉기까지 하는데, 대사들이 어찌나 웃기던지. 영화 마지막에 모텔들을 비출 때는 그 수많은 모텔들이 산처럼 보인다. 그 모텔들에서 나온 이들은 서로에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