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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화차 (火車, 2012)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약혼녀가 사라진다.
약혼녀를 찾는 남자는 약혼녀의 숨겨진 사연들을 하나씩 알게 된다.

몰입도가 굉장히 높은 영화이다.
지극히 수동적으로 영화가 시키는 대로 보기만 해도 꼼짝없이 몰입하게 될 만큼 영화의 리듬이 좋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영화 마지막에 김민희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슬로우모션으로 전개되는 부분이다.
영화 전체의 리듬을 생각했을 때 너무 과하다 싶은 부분이었다.
오히려 멍 든 채 택시에서 내리며 돈 한 푼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훨씬 더 많은 감정을 함축해서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바람난 가족'에서 성지루가 문소리의 아들을 단숨에 건물 아래로 던져버리는 장면처럼 정말 차갑고 냉정하게 영화를 끝내버렸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내가 여태껏 영화를 통해서 본 가장 신비로운 캐릭터 중 하나가 이재용 감독의 '순애보' 속 김민희이다.
멍한 표정 속에 굉장히 많은 말이 담겨져 있다고 느꼈고, 그 이후로 항상 내게 김민희라는 배우는 신비로운 이미지를 가진 배우였다.
아마 앞으로는 김민희를 떠올릴 때 '화차'부터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정말 다양한 감정들을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데, 멍 든 채 택시에서 내리는 장면에서의 그 표정은 플래시백을 사용해도 다 담지 못할 세월의 흔적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얼굴이었다.

이선균을 떠올리면 어느새 로맨틱한 남자보다도 '파주'나 '화차' 속 무엇인가 결핍된 남자가 먼저 떠오른다.
조성하의 경우, '파수꾼'에서의 연기가 제일 좋았다.
'황해'와 '화차'에서의 동적인 조성하보다 나지막히 말을 하고, 조용히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조성하가 더 좋다고 느꼈다.

조연들의 연기도 참 좋았다.
김별은 평소 발랄한 이미지보다는 다운된 톤으로 등장한다. 단막극인 '태릉선수촌'에 등장했던 네 배우 모두를 좋아하기에, 김별과 이선균이 함께하는 작품을 오랜만에 봐서 좋았다.
'부당거래'는 주연부터 조연까지 모든 배우들이 다 연기를 잘한 작품인데, '부당거래'를 봤을 당시에 짧은 등장임에도 이희준과 김민재의 연기가 참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 '화차'에서도 적은 분량임에도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제목에 불 화 자가 들어갔지만 지옥으로 가는 불수레의 이미지보다는 비가 내리는 영화의 시작을 비롯해서 비 오는 날의 질퍽한 땅과 젖어서 몸에 기분 나쁘게 붙은 옷이 더 어울린다고 느꼈다.
영화에 몰입하는 동안에는 정말 뜨겁게 에너지가 넘치는 영화이지만, 조금만 멀리서 보면 비 비린내가 진동하는 영화이다.
한 여자의 비극적 삶을 응시하게 하며, 무섭고 슬픈 체험을 하게 하는 영화이다.

정말로 수습이 안 되는 삶이라서, 도저히 이 낙인들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몇 가지나 있을까.
우린 이 영화를 통해서 그 경우의 수 중에 하나를 보게 된다.
자기 자신의 입장이라고 했을 때 이 선택은 잘못되었다고 단번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