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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플립 (Flipped , 2010)



95,96년생인 어린 두 주연배우들이 워낙 귀여워서 보는 내내 웃게 된다.
사실 영화가 엄청 좋았다기보다, 영화를 보며 떠오른 내 기억들 덕분에 더 많이 웃었고 더 많이 울컥했다.
여백이 많은 영화이기에, 영화를 보고 어떤 추억을 떠올리냐에 따라서 영화의 만족도가 달라질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외할아버지가 몇 년만 더 살아계셨다면 난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내가 좋아하고 존경했던 사람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내 부족함의 모든 원인을 그 사람에게 돌렸다.
이런 기억 때문일까.
'플립'은 풋풋한 사랑이야기이지만 내게는 존 마호니가 연기한 할아버지 캐릭터로 기억될 영화이다.

내가 지금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 곁에는 누군가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저 사람은, 그 사람 곁에 있기에 빛나는 사람이 아닐까.
내가 저 사람 옆에 있어도 저 사람은 지금처럼 빛날까.
내가 저 사람을 빛나게 해줄 수 있을까.
내 옆에 있을 때의 그가 아닌 그 사람 옆에 있을 때의 그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런 경우의 수를 다 따지고나면 뭘 할 수 있겠는가.
일단 내 옆에 둬야지 그 사람이 보여주는 빛의 출처를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더 빛나게 해줄 수 없으니 떠나줘야지라는 건 변명일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항상 있었던 그 빛을 제대로 돌보아주지 못한 자기자신을 돌아봐야할 것이다.

아직 내 사람도 아닌데 멀리서 지켜보며 헤어질 걱정부터 하며 다가가지 않는 건 비겁한 자기합리화가 될 확률이 높다.
어쩌면 '건축학개론' 속 남자주인공처럼 자신의 용기없음을 자신이 사랑했던 대상에 대한 원망으로 바꿔서 기억할지도.

항상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정작 그 사람의 얼굴이 어떤 코와 어떤 입으로 이루어져있는지 제대로 못 보고 살아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말들이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을 만든다.
물리적으로는 내 주변에 있다고 하지만 그 사람을 정말 있는 그대로, 내 마음만으로 제대로 판단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 누구의 의견도 아닌, 내 느낌과 판단을 믿고 그 사람을 온전히 내 마음만을 가지고 대하는 것, 그것이 진짜 인연의 시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