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vie

앤젤스 셰어:천사를 위한 위스키 (The Angels' Share, 2012)

 

 

세계지리를 따로 배우지 않았다.

내가 그려낸 지도는 문화를 통해서 그 모양을 갖춰나갔다.

축구, 문학, 영화, 음악 등 내가 접하는 문화를 통해 그 국가의 모습을 상상한다.

 

내게 스코틀랜드는 축구감독 퍼거슨과 영화감독 켄로치로 이뤄져있다.

셀틱과 레인저스의 축구를 실제경기보다 켄로치의 영화 속에 묘사된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잉글랜드에 대해 떠올리면 워킹타이틀사가 만들어낸 낭만적인 장면들이 떠오르는데, 스코틀랜드에 대해 떠올리면 켄로치가 그려낸 빈민가의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켄로치와 호흡을 맞춰온 폴패러비티의 각본은 역시나 안정적이다.

칸영화제에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유쾌한 영화라고 해서 기대하며 봤지만, 오히려 보는 내내 너무 가슴 졸이고 봐서 스릴러영화를 본 기분이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주인공을 응원할 수 밖에 없고, 응원하면서도 내내 불안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위스키에 대한 영화다.

법정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이들이 양조장에 견학을 간 것을 계기로 위스키의 세계에 진입하게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위스키를 만드는 과정에서 2% 정도 날아가버리는 것을 '천사를 위한 위스키'라고 부른다고 나온다.

이런 낭만적인 표현을 듣게 된다면 그 어떤 영화감독도 위스키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을까.

 

위스키에 대한 영화이지만, 켄로치의 영화인 만큼 결국 계급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 그 어떤 영화도 계급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켄로치의 영화는 항상 계급과 관련해서 한 발 더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다르덴 형제나 켄로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면, 과연 어떤 디렉팅이 이렇게 좋은 연기를 끌어내는 것일까.

훈련 안 된 일반인을 배우로 출연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리허설과 명확한 연출디렉팅이 필요하다.

어떤 디렉팅이 이렇게 훌륭한 연기를 끄집어내는 것일까.

 

'앤젤스 셰어'에 묘사된 글래스고는 거의 할렘가다.

이곳에 태어난 이들은 가난함과 폭력을 대물림 한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미션이고, 살아남는 과정 자체가 폭력이고 죄가 되는 세상이다.

 

주인공을 비롯해서 루저들이 함께 세상을 헤쳐나가는 영화를 보면 응원할 수 밖에 없다.

뭘 해도 잘 하는 사람보다, 뭘 해도 신경쓰이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이들에게 더 정이 간다.

 

낙오자 같은 주인공이 '위스키'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새로운 사람이 된다.

위법자로 살았기에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는 순간조차 위법으로 접근한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자신의 지도가 되어주고, 새로운 경험만이 자신의 영토가 되어준다.

 

지도를 보면서 내가 머물고 있는 곳보다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에 눈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세계지도나 전국지도보다 서울지도를 보기 바쁘다.

나의 지도가 딱 나의 마음만큼 좁아진 게 느껴진다.

 

위스키에 대한 영화이지만 위스키를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앞으로 새로 접할 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더 크게 만드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