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vie

떠돌이개 (郊遊, Stray Dogs, 2013)

 

 

 

 

영화소개 한 줄을 보고 끌렸던 경험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감독이나 배우들로 인해 영화를 본다.

 

'떠돌이개'는 한 줄의 소개를 보고 끌린 영화다.

이런 경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인간 광고판이 되어 일하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소개를 보고 단숨에 끌렸다.

게다가 감독이 차이밍량이다.

외로운 대만의 풍경이 절로 떠올랐다.

 

차이밍량의 '애정만세'를 보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떠돌이개'를 봤다.

20년 가까운 세월의 차이를 둔 영화다.

 

'애정만세'에서 애띤 얼굴을 하고 있던 이강생은 늙어 있었다.

침대 위에 잠든 남자에게 살며시 다가가 입을 맞추던 이강생은, 가장이 되어 두 아이를 위해 표지판을 들고 있었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배우 이강생의 20년이 어떤 시간이었을까라는 생각, 두 번째는 '애정만세'와 '떠돌이개'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었다.

 

이강생의 배우인생은 차이밍량과 함께 진행돼 왔다.

차이밍량의 영화 속 이강생은 항상 외롭다.

즉, 이강생은 배우였던 시간 내내 외로웠을 지도 모른다.

그가 외롭지 않았던 시간이 있긴 했을까.

 

 

차이밍량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서사가 있는 극이 아니라 이미지로 진행되는 영화다.

'떠돌이개'는 매혹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배추를 왜 샀냐고 묻자, 껴안고 자려고 샀다고 대답하는 딸.

아이들이 얼굴을 그려놓은 배추와 입을 맞추다가 이내 부수고 뜯어먹는 남자.

집에도 나이가 있어서, 비가 많이 오는 날에 집이 울었다고 말하는 엄마.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헐벗은 검은집, 그곳의 단란한 가정.

인간 광고판이 되어서 노래를 부르는, 닭다리를 뜯어먹는, 배를 끌고 있는 이강생.

 

차이밍량은 말했다.

극장에서 별 생각없이 이미지를 쫓아가는 이들이, 미술관에 와서 뚫어져라 그림을 보고 있는 꼴이 우습다고.

내게 영화나 미술은 처음 접했던 순간부터 너무 많은 당위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은 그 당위성을 버리고 순수하게 즐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억지로 몰입하고, 감흥 없는 영화를 좋아하는 척하고 싶지 않다.

 

차이밍량의 영화답게 롱테이크가 많다.

특히 마지막 롱테이크는 엄청 길다.

그러나 큰 감흥을 느끼진 못했다.

차이밍량이 직접 미술까지 맡았는데, 그의 롱테이크보다 순간순간의 미쟝센들이 훨씬 더 큰 감흥을 줬다.

 

내 마음을 울린 롱테이크에 대해 생각해봤다.

롱테이크가 아니라 마음에 길게 남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을린 사랑', '아이엠러브',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 속 몇몇 장면들이 생각난다.

 

'외롭다'는 적극적인 감정일까.

지극히 수동적으로 오는 감정일까.

혼자 있는 순간조차도 타인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라면 외롭지 않다고 합리화하던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난 결코 외롭지 않아, 라는 말.

홀로 있고 싶지 않아, 라는 말.

내 표정 안에서는 같은 무게를 지니고 뻗어나갈 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