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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아모레스 페로스 (Love's A Bitch, Amores Perros,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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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이름도 참 외우기 힘든 이 감독의 작품은 내게 항상 큰 여운을 남긴다.
'판의미로'의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과 함께 멕시코 출신인 이 감독의 작품들은 하나 같이 우리 삶에 대해서 성찰하게 만드는 영화를 만든다.
이 감독은 '아모레스페로스'로 데뷔해서 '21그램'을 만들고 가장 최근에 '바벨'을 만들었다.

난 '21그램'을 가장 먼저 봐서 이 감독에게 호기심을 가진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벨'이 개봉해서 보게 되었고, 최근에서야 '아모레스페로스'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 만족도는 내가 본 순서대로 점점 커져갔다.
'21그램'은 괜찮은 영화라는 정도였고, '바벨'은 내 개인적인 베스트라고 할만큼 좋은 영화였고, '아모레스페로스'는 두 영화를 합친만큼 좋았다.

실제로 이 감독이 '아모레스 페로스'를 만들었을 당시 사람들은 그를 차세대 쿠엔틴타란티노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21그램'과 '바벨'은 그를 아예 타란티노와는 차별화된 감독으로 만들었다.

난 '21그램'과 '바벨'을 먼저 보아서 이 감독의 진지한 영화세계를 보았기에, '아모레스 페로스'가 얼마나 무거운 영화일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왜 제2의 타란티노라고 불렸는지 알 수 있을만큼 영화의 템포는 생각보다 업되어있었고, 영상도 그리 무거운 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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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감독의 연출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시나리오다.
이 감독의 모든 작품에 각본으로 참여한 기예르모 아리아가의 시나리오는 구성 자체가 탄탄하다.
그의 시나리오는 항상 여러 가지 사건들이 어떤 계기로 뭉치게 된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작가는 특정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삶을 성찰하게끔한다.

영화 속에는 세 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그 에피소드는 자동차 사고를 통해서 연결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자신의 형의 부인을 사랑하는 남자가 형수와 도망가기 위해서 개싸움으로 돈을 버는 내용,
두 번째 에피소드는 자신의 가정을 버리고 톱모델과 새로운 가정을 꾸린 편집장남자가 톱모델여자가 자동차사고로 다리를 다치면서 서로 충돌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세 번째 에피소드는 안락한 가정을 포기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게릴라 요원이 되었다가 모든 것을 잃고 킬러이자 부랑자로 생활하는 남자가 세월이 지나 자신의 딸을 그리워하는 이야기이다.

모든 에피소드 자체가 워낙에 탄탄하고, 이 세 에피소드를 억지로 엮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세 가지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에피소드 순서대로 각각 배반,이기심,희망이라는 테마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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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엘가르시아베르날은 이 영화로 데뷔해서 모든 감독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가 출연한 작품 중에 '수면의 과학' ,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등을 인상깊게 보았지만 이 영화 속에서의 그의 연기가 가장 좋았다.
데뷔작에서 어떻게 이렇게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가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이 영화로 함께 데뷔해서 주목받은 이들은 감독과 가엘가르시아베르날 말고도 많은데
대표적인 이들이 촬영감독인 로드리고 프리에토와 음악감독인 구스타보 샌타올라라이다.
영화에서 개싸움 장면에서의 촬영이 굉장히 인상깊고, 영화 전체의 템포를 적절하게 조절해주는 음악의 배치도 좋았다.

두 사람 모두 '21그램'과 '바벨'에서 함께 작업했으며, 이안감독의 '브로크백마운틴'에서도 함께 작업했다.
로드리고 프리에토는 이안감독의 '색,계'에도 참여했으며, 구스타보 샌타올라라는 '브로크백마운틴'과 '바벨'로 2년 연속으로 아카데미에서 영화음악상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전세계 영화음악감독 중에서 구스타보 샌타올라라를 가장 좋아한다.
존윌리엄스나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도 좋지만 구스타보 샌타올라라의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에는 그가 참여한 영화 자체가 워낙에 좋은 것도 있지만, 그의 음악에는 삶의 황량함이 묻어난다.

'바벨'에서 일본인 에피소드에 류이치 사카모토의 'Bibo No Aozora'가 흐르는 순간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음악감독에 작곡을 잘하는 것도 훌륭한 덕목이지만, 상황에 적절한 음악을 선곡하고 배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물론 '아모레스 페로스'에서도 그의 음악은 적절하게 잘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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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는 이 각본이 가부장의 부재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가부장의 부재도 이 영화의 키워드이지만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는 사랑이다.
영화의 세 에피소드 모두 사랑을 꿈꾸지만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한다고 계속해서 외치지만 그 외침의 대상들은 그 외침을 외면하거나, 실망하거나, 듣지 못한다.

난 이 영화의 차가울만큼 현실적인 부분이 많은 여운을 남긴다고 본다.
사랑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것은 로맨틱영화의 각본 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모레스 페로스'는 사랑이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딱 우리 삶의 현실만큼 차갑게 다루고 있다.
이 차가움을 인정하기는 싫지만 결국은 안고 가야할 것이기에 이 영화가 내게 큰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