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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쉐임 (Shame, 2011)



브랜드(마이클 패스벤더)는 섹스중독자이다.
브랜드는 회사 화장실을 비롯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자위를 하고, 콜걸과의 섹스를 생활처럼 즐기고 있다.

그런 그의 생활에 균열이 생기는 계기가 생긴다.
백인남성과 흑인여성의 섹스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는 같은 회사를 다니는 흑인여사원 마리안(니콜 비헤리)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
둘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브랜드는 남녀관계에 별로 흥미를 가지지 못하고 연애도 오래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마리안은 그런 브랜드에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브랜드에게는 마리안 이외에도 생각할 거리가 하나 더 있다.
그의 여동생인 씨씨(캐리 멀리건)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자위 중인데도 불쑥들어오고, 자신이 보던 포르노방송을 보는 동생은 그에게 짐과 같은 존재이다.
섹스의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는 가족은 그에게 섹스를 방해하는 방해물에 불과하다.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 내내 브랜드와 씨시는 남매임에도 둘 사이에는 성적인 에너지가 팽팽하게 흐르고 있다.

잠시 방황하던 브랜드가 두 명의 콜걸과 섹스를 하는 중에 그의 핸드폰에 씨씨가 음성메시지를 남긴다.
오빠, 난 오빠와의 대화가 필요해.
메시지를 듣지 못하고 브랜드는 섹스를 이어간다.
관계를 필요하는 이의 메시지는 무시되고, 섹스는 계속된다.

일단 완성도에 있어서 단점을 못 찾겠다.
절제 속에서 메시지를 온전히 담은 스티브 맥퀸의 연출, 최근 보았던 영화 중에 가장 좋은 빛과 그림자를 보여준 촬영,
마이클 패스벤더와 캐리 멀리건의 환상적인 연기, 영화의 결을 더 곱게 만들어준 음악까지.

'쉐임'은 섹스중독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섹스중독자라는, 이야기가 흘러갈 수 있는 지점이 다분히 제한적으로 보이는 영화임에도 영화는 지극히 신선하고, 굉장한 몰입도를 가지고 있다.
섬세한 스티브 맥퀸 감독의 연출은, 이 영화를 섹스중독자가 아닌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영화 속 섹스는 목적지향적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미 죽어버린 관계에서 목적만으로 움직이는 것.
섹스뿐만 아니라 이미 사회 속 관계 대부분은 목적만으로 이루어진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닌 목적과 목적의 만남, 그리고 서로의 목적이 끝난 뒤 그들은 헤어진다.
아니, 헤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애초에 서로를 제대로 알 생각도, 붙어있을 생각도 없었으니까.
브랜드와 마리안이 처음으로 데이트를 한 날, 브랜드는 지금 이 식당 안에 있는 이들 모두 서로를 지겹게 여길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감정적 교감을 나누고 함께 있는 그 분위기를 즐기는 것은 사치와도 같은 사회가 된 것이다.

브랜드의 여동생 씨씨는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하고 있다.
씨씨가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서 브랜드는 눈물을 흘린다.
씨씨의 노래 가사 속에서 뉴욕은 환상의 도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브랜드를 통해서 바라본 뉴욕은 사람들의 관계로 이루어진 도시가 아니라 목적들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마이클 패스벤더와 케리 멀리건의 연기가 굉장한데, 특히 마이클 패스벤더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이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음에도 오스카에서는 후보에조차 못 오른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 스티브 맥퀸 감독도 오스카는 섹스를 겁내냐며 오스카의 보수적 성향에 대해서 한마디 했었는데, 여러모로 아쉽다.
최근 헐리우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남녀배우를 뽑으라고 하면 두 배우를 뽑을 것 같은데, 두 배우가 함께 나오는 영화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목적 뿐인 관계, 과연 회복 가능할까?
포르노 잡지를 버리고 섹스를 끊어도, 이 도시 안에서의 관계는 여전히 목적지향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섹스만이 유일하게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고, 손목을 긋는 것만이 외로움에도 탈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어쩌면 이 거대한 도시, 그 도시가 만들어낸 환상이야말로 외로움의 근원이 아닐까.
진정한 관계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배우지도 못한 채 우리는 눈을 감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