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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

취향 1. 취향 사람은 떠나고 취향은 남는다. 나는 나를 스쳐지나가는 이들의 취향이 섞여서 만들어진 존재이다. 나란 사람의 개성은 철저하게 타인의 흔적이다. 누군가의 음악, 누군가의 영화, 누군가의 문학이었던 것들이 이젠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만 같다. 누군가의 흥얼거림에서, 누군가가 지나가며 했던 말에서, 누군가가 책상 위에 적은 메모에서 시작됐다. 이런 것들이 나란 사람의 뿌리다. 이젠 내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자가증식을 해나간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내 뿌리의 끝이다. 내 취향의 시작점은 어디일까. 지금쯤 완전히 흡수되거나 부서진, 내 취향의 시작점은 언제일까. 임청하에서 왕가위로 넘어갔던, 문학반선생님에서 김영하로 넘어갔던, 김동률에서 칸예웨스트로 넘어갔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 사이의 간극은.. 더보기
괴물의 아이 (バケモノの子, The Boy and The Beast, 2015) 신촌 아트레온이 cgv의 이름을 달고 있으니 어색하다. 이전에 '마더'나 '다크나이트'를 아트레온에서 봤었다. '괴물의 아이'까지 아트레온에서 본 영화들은 하나 같이 좋았다. 시험기간에 영화어플인 '왓챠'를 시작했다. 영화를 보면 나도 모르게 영화벌점을 계산하게 됐다. 게다가 블로그에 적을 내용을 생각하는 습관은 이전부터 있었고. 블로그나 왓챠나 내겐 참 편리하고 유용한 수단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 몰입하기 더 힘들게 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일상의 내게는 무척이나 낯선 일이다. 극장 안에서라도 솔직해지고 싶다.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 내겐 극장이다. 감정의 동요에 따라 웃고 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기에 내게는 여러모로 큰 의미를 가진다. 영화는.. 더보기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Sicario, 2015) 강변cgv는 처음 가봤다. 상영관이 별로 없었기에 자주 가는 극장들 대신 강변으로 갔다. 드니빌뇌브의 작품이기에 보러갔다. '그을린 사랑'은 내게 만점짜리 영화이다. 러닝타임 내내 매혹당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내게 만점짜리 영화란, 완벽하게 잘 짜여진 영화라기보다, 영화적 비틈조차 잊게 만드는 매혹적인 지점을 가진 영화라는 뜻이다. '시카리오'는 기대했던 것 만큼이나 좋았던 영화이다. 내내 긴장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매드맥스'가 육체의 전진성을 보여주는 영화라면, '시카리오'는 정신의 전진성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보는 내내 심리적으로 계속해서 쉬지 않고 달리는 느낌을 준다. 시나리오가 엄청나게 잘 짜여진 작품은 아니다. 도식화된 부분도 많고, 이런 식의 메시지를 다룬 우화들은 이전에도 많았다. 다.. 더보기
마카담스토리 (MACADAM STORIES, Asphalte, 2015) 올 해의 마지막날.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12월 31일까지 사용가능한 영화표를 얼른 써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개봉작 중 보고 싶은 영화 두 편을 예매했다. 아침에 예매하고 잠들었다가 일어나서 급하게 사과를 씹어먹으면서 코엑스 메가박스로 갔다. 사실 개봉한 줄도 몰랐다. 아예 정보도 없이 보러갔다. 이자벨위페르라면 믿어도 될테니. 하나의 테마 안에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을 좋아한다. 이냐리투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을 테마로 한 '아모레스 페로스'나 인종 문제에 대해 다룬 폴해기스의 '크러쉬'도 같은 이유로 좋아한다. '마카담스토리'는 한 주택 안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배명훈 작가의 소설을 비롯해서 (물론 우주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런 형식의 이야기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