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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Sicario, 2015)

 

 

강변cgv는 처음 가봤다.

상영관이 별로 없었기에 자주 가는 극장들 대신 강변으로 갔다.

 

드니빌뇌브의 작품이기에 보러갔다.

'그을린 사랑'은 내게 만점짜리 영화이다.

러닝타임 내내 매혹당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내게 만점짜리 영화란, 완벽하게 잘 짜여진 영화라기보다, 영화적 비틈조차 잊게 만드는 매혹적인 지점을 가진 영화라는 뜻이다.

 

'시카리오'는 기대했던 것 만큼이나 좋았던 영화이다.

내내 긴장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매드맥스'가 육체의 전진성을 보여주는 영화라면, '시카리오'는 정신의 전진성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보는 내내 심리적으로 계속해서 쉬지 않고 달리는 느낌을 준다.

 

시나리오가 엄청나게 잘 짜여진 작품은 아니다.

도식화된 부분도 많고, 이런 식의 메시지를 다룬 우화들은 이전에도 많았다.

다만 시나리오의 공백들을 연출을 통해 효과적으로 채웠다.

'무엇'에 대해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훨씬 중요한 시대이다.

 

'시카리오'는 익숙한 메시지를 신선하게 전달한다.

예상가능한 지점마다 낯선 느낌을 주는 이유는, 드니빌뇌브가 영화의 템포를 능수능란하게 조정한 덕분이다.

좋은 연출의 기준이 결국 리듬의 문제에 있다는 것을 '시카리오'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됐다.

 

에밀리블런트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올 때만 하더라도, 그녀의 필모그래피가 이렇게 탄탄해질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다.

'그을린 사랑'의 여배우들과 '시카리오' 속 에밀리블런트를 보면 드니빌뇌브가 좋아하는 여배우의 얼굴은 세사 가장 밑바닥에서도 한 줌의 믿음을 간직한 얼굴이 아닐까 싶다.

독한 세상에 함몰되어 믿음을 잃어가는 순간, 그 순간의 무기력한 표정을 클로즈업할 때 우리는 스산함을 느낀다.

 

보는 내내 감독의 전작인 '그을린 사랑'보다도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더 많이 떠올랐다.

영화적 리듬이 무척이나 닮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시카리오' 둘 다 나온 조쉬브롤린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조쉬브롤린은 좋은 연기력에 비해 상복이 너무 없는 것 같아 아쉽다.

 

가장 좋아하는 남자배우를 묻는다면 베네치오델토로라고 답한다.

하비에르바르뎀과 마이클파스벤더 앞에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일순위는 베네치오델토로이다.

'트랙픽'이나 '21그램'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도 좋았지만, 앞으로 그의 연기를 떠올릴 때 '시카리오'를 제일 먼저 떠올릴 것 같다.

 

과잉된 캐릭터는 그 자체가 튀기 때문에 누가 연기를 해도 잘한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반면 저기압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 배우의 내공이 드러난다.

'더 퀸'의 헬렌미렌이 대표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더 퀸'에서 그녀는 과잉된 연기 하나 없이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는데 그 단단함에서 오는 무직함이 있다.

 

베네치오델토로도 마찬가지이다.

감정을 숨기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내공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캐릭터들의 심연이 관객들에게 느껴지는 순간 좋은 연기라는 것이 증명되고, 베네치오델토로는 항상 그것에 성공해왔다.

 

시종일관 그는 무표정하다.

감정적인 변화 앞에 과잉된 모습을 보이기보다 대사톤과 표정의 리듬을 살짝 바꾸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표현한다.

'시카리오'의 영화적메시지가 관객에게 크게 와닿는 이유 중 하나는 베네치오델토로의 존재감 때문이다.

그의 담담한 표정 앞에서 우리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을 체험하게 된다.

 

로저디킨스의 촬영도 인상적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촬영감독이기도 하고, 코엔형제를 비롯해서 많은 감독들과 작업해온 촬영감독이다.

'시카리오' 속 가장 명장면 중 하나는 땅굴 장면인데 그 장면에서 야투경 등을 사용한 촬영이 정말 효과적이었다.

막힌 차도에서의 총격전 촬영도 인상적이다.

똑같은 장면을 로저디킨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촬영했다면 어땠을지 상상이 잘 안 된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FBI요원인 케이트, 국방부 고문인 맷, 정체불명의 알레한드로, 세 명이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영화의 기본스토리이다.

중간에 인서트 컷처럼 멕시코경찰과 그의 아들이 나온다.

메인플롯 이외에 왜 멕시코경찰의 아들이 나오는 것일까.

 

영화를 보고나면 세 인물이 겹쳐지는 순간이 온다.

폭력과 밀접하게 맞닿아있음에도 아직 순수성을 간직한 멕시코경찰의 아들.

자신이 부조리한 세상과 맞서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폭력 속에 뛰어든 케이트.

부조리에 속해서 부조리함을 행함과 동시에 적대시하는 알레한드로.

 

이들은 결국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이다.

멕시코경찰의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혹은 살아남기 위해서 카르텔에 뛰어들 확률이 높다.

케이트가 마지막에 알레한드로를 쏘지 않은 것은 결국 자신의 미래이고,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한 사람을 죽인다고 그 세계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이제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알레한드로는 자신의 가족을 잃고 자신의 목적을 향해 전진한다.

케이트에게 충고하면서 멕시코경찰을 믿지 말라고하는 것은 자신이 직접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들어서 세상의 평화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면 그것이 말도 안 되는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세상은 더 나빠질 것이고 말하는 것이 더 공감되고 위로가 된다.

순수함 사람이 태평하게 느껴지고, 현실적인 사람의 조언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착하고 나쁘고의 기준 또한 달라졌다.

 

세상이 나빠지니 내가 나쁜 것은 정당해, 라고 말하는 순간 시민사회 회복의 꿈은 사라진다.

이 세상은 이제 정말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영웅이 탄생하기를 바라는. 기적이나 꿈꾸는 사회가 됐다.

 

멕시코에서 벌어진 일이라지만, 이 영화의 메시지는 현재 우리사회에 너무 잘 들어맞는다.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

내가 타인에게 무한하게 칭찬해주고 긍정해주는 근거조차도 현실의 체념에서 온다는 사실이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