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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피아니스트 (La Pianiste , The Piano Teacher , 2001)


미하엘 하네케는 비극을 아무 예고도 없이 툭하고 보여준다.

원작 '피아노 치는 여자'를 읽고 보는 게 인물들의 전사를 유추하기에도 좀 더 좋다.

적절하게 각색되었지만, 그럼에도 소설 원작을 봤기에 좀 더 풍부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존재한다.


엄마의 욕망을 대신 실행하는 딸, 엄마의 기대에 부흥하는 것과 자신의 솔직한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딸, 사랑하고 싶으나 이미 남들과 다른 식으로 자라난 사랑의 방식 등 여러가지 욕망의 축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자벨 위페르는 이 다양한 감정들을 수용하기 위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같은 무표정 안에서도 비어있는 얼굴과 채워진 얼굴이 있다.

훗날 시간이 지나 '엘르'를 찍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묘하게 대칭을 이루는 캐릭터다.


브느와 마지멜도 칸에서 이자벨 위페르와 나란히 주연상을 받았지만, 오히려 애니 지라르도가 더 눈에 들어왔다.

존재감으로 전사가 다 드러나는 캐릭터라 그런걸까.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정상적인 사랑 따위 없다.

정상, 남들처럼 같은 말은 사랑을 하려는 이들에게 적절한 언어는 아니다.

사랑만큼 개인적인 일이 존재할까.

다만 그 사랑의 형태를 조율하는 과정은 늘 힘들다.


'피아니스트'부터 '엘르'까지, 그 사이에 이자벨 위페르가 나오진 않지만 캐릭터의 결을 따지면 '님포매니악'까지 삶과 사랑의 형태에 대해 말하는 영화들이 떠오른다.

가학으로 묶기에는 너무 거대한 삶.

게임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삶.


마치 피아노의 강약처럼 이들 삶의 리듬도 다양하게 흘러간다.

영화의 존재를 알고 원작소설을 읽어서, 대략 상상을 했는데 몇몇 장면은 그보다도 더한 인상이라 놀랍다.


'히든' 한편만으로도 미하엘 하네케는 거장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과거작들을 추적해나가다 보면 어디까지 이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