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제인'을 보고나서 구교환 배우의 작품을 찾아보다가 이옥섭 감독이 연출한 단편들을 보게 됐다.
소설로 치면 윤고은, 김희선 작가와 결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만화 같은 발상을 끝까지 밀고 나가고, 톤 자체는 귀엽고, 보고 나서 느껴지는 메시지에서는 묵직함이 있는.
단편에서 메시지가 엄청나게 묵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메기'는 굉장히 묵직했다.
'꿈의 제인'에 나왔던 배우들을 다시 봐서 반가웠다.
이주영, 구교환부터 시작해서 박경혜, 박강섭까지.
크레딧에서 제작지원에 심달기라는 이름을 보고 설마 '페르소나'에 나왔던 그 배우인가 했더니 맞았다.
통통 튀어서 리듬이 과하면 어쩌나 싶을 때마다 문소리가 등장해서 자연스럽게 균형을 맞춰주는 느낌을 받았다.
이원석 감독의 '남자사용설명서'가 가장 과소평가 받는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화면에 다양한 장치가 들어가면 평가절하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톡톡 튀는 연출이 들어가는 건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메기'의 은유가 직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너무 산발적으로 많은 것을 다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메기'는 청년들에 대한 영화다.
오늘의 고민을 해결 못하고 품고서 잠들고 내일도 또 하나의 고민을 만난다.
일터에서나 사적인 시간에서도 늘 기대보다는 걱정이 크다.
짐처럼 거대한 고민을 품은 채로 본 영화다.
가장 힘이 되는 위로는 '잘 될 거야'라는 남일처럼 하는 말이 아니라 '나도 그랬을 때 힘들더라'라는 유대감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물론 불행배틀이 되면 안 되겠지만.
이런 위로의 방법조차도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배웠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마지막이길 바란다) 인종차별을 겪었던 곳이 스페인인데, 얼굴도 못 본 스페인 감독의 영화로부터 위로의 방법을 배운다.
어쨌거나 엔딩크레딧까지 다 내려간 뒤에도 내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싱크홀처럼 뻥 둟린 채 자리 잡은 고민을 구경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많지만 전문적으로 메워줄 방법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결국 내가 해결해야겠지.
구덩이에 빠지면 기어나올 생각부터 해야할 텐데, 너무 깊으면 어찌해야하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끝까지 부정적으로 파고 드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아예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건을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해결이 요원하므로 그냥 영화나 본다.
고민을 유예할 뿐 해결은 안 된다.
다만 무한하게 확장할 고민의 일부를 영화로 채울 수는 있다.
일단은 그거면 된 거라고 생각한다.
잘 해결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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