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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레토 (Leto , Summer , 2018)


시사회 전까지는 전혀 기대를 안 했다.

칸영화제 진출작이지만 과연 괜찮을까 의구심부터 들었다.

흔한 뮤지션 전기영화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인물들이 영화화 과정에서 뻔해진 사례는 무척이나 많으니까.


결과적으로 예상과 달리 괜찮은 작품이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리듬일텐데, '레토'의 리듬은 훌륭하다.

무엇보다도 예상했던 지점은 계속해서 벗어나서 좋았다.


뻔한 음악영화보단 차분한 드라마에 가깝다.

음악보다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야 하는 영화다.

최근 '보헤미안 랩소디'에 열광한 관객보단 평소에 정적인 드라마 속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게 흥미로운 관객들에게 어울릴 작품이다.


시대가 가진 열망에 대해서 작위적으로 보여주기보단 연출을 통해 보여준다.

mtv뮤직비디오처럼 서구의 곡들이 뮤지컬 시퀀스로 등장하고, 중간중간 소리극의 변사 같은 캐릭터가 관객에게 말을 건다.

당시 금지된 것들을 연출로 보여주면서 시대의 열망이 드러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흑백인 세상에서 이들의 음악은 컬러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빅토르 최의 전기영화지만 그가 막 음악계에 입문할 당시의 영화다.

즉, 빅토르 최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가 발 디딘 세계에 대해 좀 더 공들여 묘사한다.

특히 그의 멘토, 삼각관계를 이루는 여성까지 셋의 감정선이 흥미롭다.

세 사람의 감정선이 '레토'에서는 음악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영화 제목도 '여름'을 뜻하는 '레토'일 거다.


영화 후반부에 취한 인물이 스크린 속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이 있다.

'레토'에 시네마에 해당하는, 관객으로 하여금 체험의 영역으로 뛰어들게 하는 장면이 있을 거라고 상상 못 했기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드라마적으로 허술한 부분이 많지만, 이 당시 대중의 열망과 시대의 억압이 충돌하는 정서는 절절하게 느껴진다.


음악영화지만 정적인 무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새로웠다.

창작물을 접할 때 1차적으로 드는 뻔한 발상을 벗어날 때 가장 기쁘다.


유태오 배우가 러시아어를 너무 유창하게 해서 전혀 기시감이 없었다.

배우들의 분장 등이 어색할 수도 있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정서가 그 틈을 채워준다.


괜찮은 음악영화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겨울에 만난, 아주 괜찮은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