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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킬 빌 (Kill Bill: Vol. 1, 2003)



문득, '킬빌'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요즘 들어서 자꾸 봤던 영화들을 다시 보게 된다.
영화를 다시 보는 경우는, 영화 속 특정 시퀀스가 보고 싶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킬빌'을 다시 보면서 중점적으로 보게 된 것은 음악과 프로덕션 디자인이다.
수다쟁이 타란티노는 대사만으로도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인간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음악과 디자인의 힘도 크다.
우탱클랜 때부터 쿵푸와 힙합을 접목시킨 르자의 음악은 킬빌을 동서양의 정서와 스타일이 완전히 결합된 영화로 만드는데 큰 공을 세운다.
나카자와 카즈토의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부분과 자신이 봤던 B급 영화속 애꾸눈여자 캐릭터를 마크제이콥스 코트를 입혀서 등장시키는 등, 그는 영화 속 단 한 부분도 평범하게 놓아두지 않는다.

사실 오마쥬라는 명목으로 따라하기에 그친 영화들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아예 그 수많은 영화들을 흡수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버린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가 얼마나 영화를 좋아하고, 자신의 솜씨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났는지가 느껴진다.
보는 내내 피로감이 느껴지는 잔인하고 긴장감 있는 시퀀스조차도 다시 보고 싶어지게 하지 않는가.

'킬빌2'의 서부극와 소림무술 영화에 대한 오마쥬들도 좋았지만, 1편의 스타일과 정서를 더 좋아한다.
수많은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장면들이 많지만, 결국 현대의 많은 영화인들이 지금은 킬빌 시리즈를 하나의 새로운 시리즈로 받아들이고 영향을 받지 않는가.

하네케 감독과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구조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논다는 느낌이 드는데,
타란티노와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면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개성 있게 풀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틀이라는 단어도 타란티노 앞에서는 사실 우습다.
그의 신작은 서부극에 대한 오마쥬가 될텐데, 그는 오마쥬라는 단어가 무색할만큼 또 개성있는 작품을 들고 올 것이다.
그가 삼킨 수많은 영화들이 어떻게 새로운 영화로 탄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