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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디스트릭트9 (District 9, 2009)



학기 내내 영화가 보고 싶다고 징징거렸지만 과제로 영화를 보려고 하면 어찌나 싫은지.
아무튼 과학소설 수업 과제 덕분에 새벽에 일어나서 과제하나 끝낸다는 기분으로 '디스트릭트9'을 보았다.
그런데 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과제라는 것을 잊고 엄청 재미있게 보았다.

수업 과제가 이 영화의 빈틈을 찾는 것이었는데, 굳이 찾지 않아도 허점들이 엄청 많았지만 그럼에도 매력적이었다.
단점이 많은데도 매력적이면, 이건 정말 치명적인 것이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초반부터 사건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된다.
빠른 전개 덕분에 몰입도도 높은 편이다.

그리고 그 몰입은 끝까지 이어진다.
메시지를 굳이 찾자면 인종차별이라는 키워드를 끌고 올 수 있겠지만, 굳이 남아공이라는 배경과 인종차별의 메시지를 붙이지 않아도 장르영화로서의 재미는 충분하다.
아무 생각없이 보아도 보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만큼 장르영화로서의 재미도 크고 흡입력이 강하고, 뜯어보면 더 많은 메시지가 쏟아지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근사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관습적일 수 있는 부분을 '특별하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이미 익숙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풀어내는 것,  그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스타일이고 개성이 결정짓는 부분이다.

주인공 캐릭터도 마음에 든다.
이렇게 우유부단한 루저 캐릭터의 우여곡절 이야기를 어찌 안 좋아할 수 있겠는가.
이 결핍된 루저 아저씨를 보는 내내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다.
물론 이 루저 아저씨는 처음부터 살짝 밉상이지만.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한 덕분에 핸드헬드가 주는 긴장감 또한 크고, 인물들이 카메라에 대고 뱉는 말들이 가지는 정서적 감흥 또한 크다.
'클로버필드'를 보면서 다큐멘터리 형식을 기법으로 잘 사용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잘 활용 못했다고 느꼈는데, 이 영화에서는 모큐멘터리 형식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주인공 캐릭터에 연민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 괴물들을 보면서 동정하게 된다.
괴물들이 약자로 설정되어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 웃기다.
남아공에 있는 피지배층을 상징하는 존재들이기도 하고, 물리적 힘이 권력의 척도가 되지 않는 현 세대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매스미디어가 주인공에 대해 외계인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매도하는 부분은, 집단이 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한다는 메시지에 있어서 '베리드'를 떠올리게 한다.
보는 내내 외계인이 더 인간처럼 보이는 아이러니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에 쓰인 장치나 설정들이 너무나 영리하다.
특히나 관습적이기 쉬운 장르물에서 이렇게 영리하게 신선한 이야기를 풀어낼 줄이야.

SF장르에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라는 말이 핑계라는 것을 '디스트릭트9'이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이 외계 세계로 가는 설정으로 후속편이 나왔으면 하지만 나올 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