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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천주정 (天注定, A Touch of Sin, 2013)

 

 

 

주말의 삼청동은 꽃과 사람으로 가득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처음으로 가보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붉은 건물을 향해 사람들 사이로 황소처럼 달려갔다.

 

미술관 안에 있는 극장임에도 스크린이 굉장히 커서 놀랐다.

지아장커의 영화를 버틸 지구력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무협영화의 형식을 가져왔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서 보게 되었다.

 

잘 만든 영화이다.

영화에 대해 말할 때 여러 영화를 묶어서 함께 말하는 걸 좋아한다.

그동안 소노시온의 '자살클럽'과 구로사와기요시의 '큐어'를 항상 함께 말해왔는데, 이젠 그 목록에 '천주정'을 포함시켜서 함께 말할 것이다.

이 사회가 어떻게 한 개인을 미치게 하고, 서로 물고 뜯게 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영화들이다.

 

지아장커 감독의 실제로 중국에서 일어난 네 개의 사건을 토대로 만든 영화이다.

사회비판적인 영화다보니 보고나면 답답하다.

내가 이 땅위에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라는 생각까지 든다.

사회가 구성원을 범죄자로 만드는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고, 누구나 그것을 알지만 모른 척 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하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살인누명을 썼다가 자유를 되찾는다는 내용을 가진 경극 '옥당춘'이 마지막에 등장한다.

경극을 목격하는 주인공의 뒤에 서있는 수많은 구경꾼들의 얼굴이 카메라에 담긴다.

영화에 잔인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러려니 하고 볼 수 있었다.

불편해서 눈을 돌리게 된 장면은 다름 아닌 마지막에 카메라에 잡힌,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경극을 멍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이었다.

 

이 영화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들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마지못해 최후의 보루로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삶에 폭력을 가하는 이도 있고, 자신을 괴롭히는 이에게 폭력을 쓰는 이도 있다.

중국공항에서는 과도조차 허용해주지 않지만, 과도로 사람을 찌를 수 밖에 없는 순간에 사람들은 방치되어 있다.

내가 이 정도까지는 해줬잖아, 라는 식의 생색만 내는 사회 속에서 구성원들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게 된다.

법과 도덕으로 폭력을 지양했음에도 폭력이 끊이지 않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내게 영화의 시작은 홍콩이었다.

홍콩에서 중화권 영화로 넘어왔고, 지금까지도 내가 그린 영화의 지도에서는 중화권이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한다.

그 지도에서 지아장커에 점을 찍었다.

지아장커를 통해 나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광경을 보게 될까.

현실이면 눈을 감았을 순간이지만, 영화이기에 또렷하게 목격하고 가슴에 새기고 전진해야한다.

그렇게 영화는 현실에서 눈을 뜨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