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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이규호 - 뭉뚱그리다

 


꽃잎 휘날리던 눈부신 언덕
흐릿한 얼굴 흩어 지나가는 이름 두 자에
안부를 묻고 예쁜 기억만 남겨 두었지

흘러간 시간
사실과는 달리
그저 우리를 다시 서로를
좋은 사람이란
막연함과 평온 속에 가두고

아름다운 시절이다
푸르른 날들이다
뭉뚱그리고

오, 바보 같은 시절이다
외길 하나 돌아가기 멀어진 숲속이다

흘러간 시간
사실과는 달리
그저 우리를 다시 서로를
한때 감정이란
막연함과 허공 속에 가두고

아름다운 시절이다
푸르른 날들이다
뭉뚱그리고

오, 바보 같은 시절이다
무엇 하나 돌아가기 멀어진

아름다운 시절이다
푸르른 날들이다
뭉뚱그리고

오, 바보 같은 시절이다
무엇 하나 되살리기에 늦은 무덤이다





얼마 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이규호가 나왔다.
이규호의 음악은 들으며 지내왔지만, 그의 외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중성적인 목소리를 가졌지만, 그가 남자라는 것만 언뜻 들었을 뿐.

그런데 막상 방송을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정보인 성별조차도 믿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과연 남자가 맞을까 싶을 만큼 묘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74년생이라니.
'베니스의 죽음'에 나오는 비요른 안드레센을 보는 기분이었다.

나와 함께 방송을 보고 있던, 이규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들은 이규호가 남자라고 말해도 믿지 않았다.
저 사람은 여자일 것이라고, 사람들은 쉽게 단정지었고, 나는 휩쓸렸다.
그래,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이규호는 여자였구나.

그렇게 방송 이후로 이규호를 여자로 알고 지냈다.
이승환의 '꽃'이나 윤종신의 '몰린', 박정현의 ' 지금은 아무 것도 아냐'와 같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여자임에 틀림없다고 믿었다.
그러던 차에 '이규호 성별'이라는 썩 유쾌하지 않은 검색어를 검색창에 입력하고, 나와 같은 의문을 품은 이들이 꽤나 많다는 사실과 함께, 그가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별 떄문에 잠시 흥분했는데, 어쨌거나 이규호의 새 앨범에서 단연 돋보이는 곡은 '뭉뚱그리다'이다.
앞에서 언급한 그의 발라드 곡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감성이 이 곡에도 진하게 묻어난다.

우리가 뭉뚱그리며 넘어갔던 사랑의 순간들에 대한 노래이다.
뭉뚱그리다, 라는 표현이 비겁할 수 있다는 것을 이 노래를 통해 다시 한 번 느낀다.
난 참으로 열심히 이것저것 뭉뚱그리며 살아왔음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난 이 노래가 슬픈 가운데 무섭기도 하다.
슬퍼하면서 난 또 다시 무엇인가를 뭉뚱그릴 테니까.
오늘 하루를, 나의 누군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