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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엘르 (Elle , 2016)


폴버호벤을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마치 청소년 시절에 자국리그에서 유망한 공격수였다가 큰 리그에 가서 자신에게 잘 맞는 포지션이 아닌 미드필더까지 맡으며 고군분투하다가 자국에 와서 다시 살아난 거장의 느낌.

물론 그가 '로보캅', '토탈리콜', '원초적본능' 등 헐리우드에 남긴 장르영화의 족적은 굉장한 것이다.


폴버호벤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출신인 공격수 카윗이 떠올랐다.

리버풀에서 헌신적인 윙으로 활동했지만 사실 그는 득점왕 출신의 공격수이고, 결국 고국으로 돌아와서 은퇴시즌에 페예노르트에서 리그우승을 달성하며 자신의 커리어 첫 리그우승 트로피를 받게 된다.


'엘르'는 칸영화제에서 무관에 그쳤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굉장히 완성도 높은 영화이다.

최근 내게 가장 큰 이슈는 예술의 '정치적 올바름'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주인공 여성의 행동은 다수의 논리로 본다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심지어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 이해한다거나 옹호한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일종의 위악이자 스스로의 소외를 자초할 수 있을 만큼.

강간으로 시작한 뒤, 그녀와 엮인 남자들, 그녀의 가족들까지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녀는 존재자체로 경계이다.

방금까지 서쪽에 있던 그녀는 단숨에 동쪽에 가있다.

가운데 서있는 경계가 아니라 미친듯이 오가서 정의할 수 없는 경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녀의 과거가 단서 정도만 밝혀지지만, 우리는 그 단서만으로도 그녀가 경계 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된다.


영화 속 강간범이 복면을 쓰고 있을 때와 쓰지 않았을 때 관객들은 판단에 있어서 혼란을 느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복면만 아닐 뿐 가면을 쓰지 않은 인물이 존재할까.

주인공 여성은 자신이 가면을 쓰지 않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힘든 것을 힘든다고 말한다.

그런 그녀를 싸이코패스라고 부르기에는 그러한 판단 자체가 더 폭력적인 것이 아닐까.


미하엘하네케가 떠올랐고 그것은 아마 이자벨위페르가 출연하기도 했던 '피아니스트' 때문일 것이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 또한 여러번 떠올랐다.

영화의 톤 때문이 아니라 '엘르'는 결국 폭력의 역사에 대한 영화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폭력을 보고 저항하고, 누군가를 순응하고, 누군가는 포기하고, 누군가는 또 다른 폭력을 만든다.

폭력이 정당방위가 되는 순간이 있고 용납 안 되는 순간도 있다.

그것은 사회구성원들이 정한 기준이지만, 그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최진영의 소설 '당신 옆을 스쳐지나간 소녀를'은 소녀가 자신이 당하는 폭력을 온전히 목격한 인형을 챙기면서 시작한다.

'엘르'속 고양이의 눈은 목격의 역할이다.

다들 경계에 서있지만 고양이는 그것을 목격한다.

우리는 고양이보다 객관적으로 이 사건들을 판단하긴 힘들 것이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의문이 계속된다.

이자벨위페르의 연기를 칭찬하기에는 그녀의 연기가 나빴던 적이 없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보며 그녀의 최고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뿐이다.

계속해서 고민하게 만들기에 '엘르'는 좋은 영화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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