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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무뢰한 (The Shameless , 2014)


적과 사랑에 빠져버린다는 것은 흔한 설정이다.

그러므로 특별하기 어렵지만 '무뢰한'은 거의 교과서에 가까울만큼 완벽하게 그 설정을 극대화해서 탁월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내내 숨긴다. 

과잉된 부분도 거의 없고, 대사조차 절제하기 때문에 오히려 두 중심인물 외에 인물들이 개입되는 순간 그들의 일상적인 몸짓과 대화들이 과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정서적으로 지친 두 남녀가 계속 함께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정적인 상태에 몰입해서 그들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조연인 김민재의 연기도 좋았고, 김남길은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을 새겨냈다.

영화에서 가장 울림을 주는 연기는 전도연이 보여준다.

이젠 더 이상 불행한 캐릭터의 그녀를 보고 싶지 않을만큼 그녀는 '무뢰한'에서도 절절하다.


영화에서 가장 울림이 컸던 장면이라면 전도연이 김남길과 맞이한 아침식탁에서, 함께 도망가자는 말이 장난이었다고 하는 김남길에게 섭섭함을 눈 대신 자신이 요리한 잡채를 먹으며 은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 초반에 음식을 버리는 장면과 매치되면서, 그녀에게 요리란 사랑하는 이를 위한 것이고, 그녀는 도망가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면서 유일한 특기로 '요리'를 언급한다.

즉, 그녀의 삶은 오로지 남을 위해서, 사랑하는 남자들만을 위해서 쓰여왔다.

사랑을 꿈꿨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행복이 아니라 버거운 삶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사랑에 의지한다.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 앞에 그녀는 또 다시 흔들린다.

그리고 어떻게든 믿고 싶어한다.

이것은 반드시 사랑일 것이라고.

그런 그녀 앞에서 남자는 자신의 정체를 명확히 알릴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끝내고 나서도 그녀의 주변을 서성인다.

그녀를 힘들게 하는 외적요소들을 제거해나간다.

오히려 그녀에게는 익숙해져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드렸던 일상보다, 그녀 삶에 개입해버린 사랑이 훨씬 더 가혹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버린 사랑이 거짓으로 판명되었을 때의 상처는, 일상에서 느끼는 남들 눈에 가혹해보이는 현실보다도 더 큰 상처일 것이다.


그는 그녀와 재회하자마자 자신은 역할을 했을 뿐 배신을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그가 정착했던 곳은 그의 마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사건이 아닌 그녀의 마음이었다.


그는 결국 그녀의 칼에 맞는다.

칼을 꽂은 채 걷던 그는 혼잣말로 그녀에게 새해에는 행복하라는 말을 전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죄값을 치루었다는 면죄부가 되어준 것이고, 그녀의 삶에 악역으로라도 기억되고 싶기에 그녀에게 잊혀지지 않을 존재가 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그를 삭제하기 위한 움직임이, 그의 입장에서는 그녀의 삶에서 완전히 기억되는 움직임이 된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엇갈린 상황, 동일한 사랑이 그들을 힘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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