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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언더 더 스킨 (Under The Skin, 2013)

 

 

도서정가제 전에 책들을 마구마구 산 덕에 알라딘에서 영화할인권을 받았다.

얼른 할인권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예매가능한 영화들 보다가, 우연히도 이 영화를 발견했다.

연말이라서 올해의 영화 리스트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언더 더 스킨'이 1위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상영이 끝나고 평론가들의 좌담도 있다고 해서 보러갔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항상 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이날에서야 처음 갔다.

 

조나단 글레이저는 두 남녀가 벽을 뚫고 계속 달려나가는 리바이스 광고로 유명한 사람이다.

뮤직비디오와 광고를 많이 찍다보니 장면이 기본적으로 감각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동진 평론가도 올해의 영화 1위로 뽑은 작품이지만, 내게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신선하고 감각적이다.

딱 그 정도이다.

 

전반부가 좋았다.

시작부터 화이트스크린 앞에서 다른 여성의 옷을 벗겨다가 입는 스칼렛 요한슨,

남자들을 유혹한 뒤에 암흑 속에서 늪으로 빠지는 장면,

물 속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점점 가공되어가는 남성들.

매혹적인 장면들이 많았다.

 

'도그빌'과 마찬가지로 미니멀한 장치를 사용한 영화들을 좋아한다.

SF를 미니멀하게 풀어나간다는 발상 자체가 독특하게 느껴졌다.

 

압도적으로 좋다고 생각했던 것은 음악이다.

영화 전반에 대한 의심은 크지만, 음악은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다.

음악이 엄청나게 크게 작용하는 영화이다.

몇 백 억 짜리 CG보다도 더 큰 값을 하는 음악들이 많이 등장한다.

 

인간을 타자화해서 바라본다는 설정 자체는 좋다.

원작소설과 톤이 완전히 다르다고는 하지만, 성적인 뉘앙스가 들어간 덕분에 주제 자체가 성으로 완전 틀어져버린 느낌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이 영화를 보고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영화가 끝나고 이용철 평론가를 비롯해서 세 명이 좌담을 했다.

시간이 없어서 중간에 나왔는데, 이용철 평론가의 평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외계인임에도 노동하는 느낌이 컸는데, 외계인조차도 지구에 오면 노동을 해야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흥미로운 시각이다.

 

아마 스칼렛요한슨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노출이 있기는 하지만 전혀 감흥없이 묘사되기에 노출을 기대하고 보면 졸린 영화가 될 것이다.

 

'언더 더 스킨'은 어느 정도 전개 되다보면 나타날 법도 한 클리셰를 철저하게 무시한다.

관습적인 쪽으로는 아예 쳐다도 보지 않고 계속해서 지리멸렬하게 나아가다 보니, 계속해서 반복되는 지리멸렬함조차도 신선하게 느껴진다.

만약에 주인공이 사랑을 깨우친다던지하는 신파로 나갔다면 이 영화는 아예 가치를 잃었을 것이다.

 

걸작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특이한 영화라는 것은 분명하다.

걸작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 묘한 느낌을 계속 곱씹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