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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Kirschbluten - Hanami, Cherry Blossoms - Hanami, 2008)

 

 

 

 

 

 

올해에 개봉한 영화는 아니지만, 올해 가장 인상적으로 본 영화이다.

 

시사회 응모를 하려고 곰플레이어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곰티비 무료영화 목록에 이 영화가 있었다.

마침 구하기 힘든 영화라서 봤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우연한 만남을 통한 치유에 대해 말한다.

나는 우연히 이 영화를 만났고 치유받는 기분을 느꼈다.

 

낯선 사람을 원하는 이유도,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이유도 결국은 같다.

치유받고 싶은 것이다.

덜 외롭고 싶고, 보호받고 싶은 것이다.

 

분위기로 보자면 영화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부부가 함께하는 부분, 남자가 홀로 남은 부분, 소녀가 나타난 부분.

처음은 '세상의 모든 계절'을 연상시키는 다정하고 돈독한 부부가 나오고,

홀로 남은 남자는 '어바웃 슈미트'의 잭니콜슨을 연상시키고,

소녀가 나타난 뒤로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가 떠오른다.

 

남자가 홀로 남은 부분부터 이 영화가 흥미로워졌고,

소녀가 나타난 부분부터는 이 영화가 신비롭게 느껴졌다.

 

감독의 비교적 최근작인 '헤어드레서'를 좋아한다.

'헤어드레서'는 우울한 주제일 수도 있음에도 엄청 밝고 위트있게 연출해했는데,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잠깐씩 웃긴 부분이 있긴 하지만, 밝은 톤의 화면에도 불구하고 스산함이 깃들어 있다.

 

일본소녀가 주는 이미지는 말로 형용하기 힘들 만큼 신비롭다.

이리즈키 아야가 이 작품 이후로 왜 다른 작품을 촬영하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일련의 시퀀스 앞에서는 넋을 놨다.

후지산 앞에서 추는 춤, 팻말을 목에 걸고 우는 소녀.

마법 같은 장면들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서 본 아름다운 순간들.

그것들이 죽음 앞에 놓여있기에 아름다운 것일까.

우리 삶이 죽음 앞에 놓여있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여유있게 볼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내가 내 삶을 여유있게 살펴본다는 게 언제부터 사치스러운 일이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