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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홍등 (大紅燈籠高高掛 , Raise The Red Lantern , 1991)

코로나 이후로 처음으로 극장에 갔다.

'1917'처럼 보고 싶었으나 참았던 작품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가야겠다 싶었다.

장예모의 '영웅'을 좋아하는데 그의 초기작들은 이왕이면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다.

지금 아니면 안 보겠다 싶기도 했고.

큰 스크린에서 보는 건 특별한 경험이니까.

 

오랜만에 가는 극장이라 그런지 보는 내내 가슴 벅찼다.

게다가 공리는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웠다.

장예모의 사회비판은 공리를 통해 더욱 절절하게 다가왔다.

 

극장이기에 울컥한 장면도 존재한다.

집이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장면.

일단 첫 번째 부인의 큰 아들이 부는 피리소리에 이끌려 올라갔다가 만난 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장면을 멀리서 촬영하는데 그 상황에서 모든 것이 느껴졌다.

또래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팔리듯 결혼 온 여자의 운명.

 

마지막 엔딩에서 귀신처럼 떠돌아다니는 공리의 모습에 울컥했다.

배경도 겨울이고.

 

큰 집에 살지만 정작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이의 운명이란 어떨까.

이런 한탄은 큰 집에 사는 하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 주인에게 총애 받지만 결국 하녀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하녀의 이야기는 서브 플롯이라기에는 여운이 짙다.

 

세상을 적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죽거나 미치거나 위법자가 되거나,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 이가 떠오른다.

구로사와 기요시로 기억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찾아보니 출처가 다른 것 같기도.

어쨌거나 이 모든 방법이 '홍등'에 모조리 등장한다.

음악과 촬영까지 좋아서 내내 빠져들어서 봤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대한극장의 나머지 장예모 영화들도 모조리 예매했다.

마감이 아닌 이유로 영화를 보는 것도, 극장에 온 것도 오랜만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참 좋은 일이라는 걸, 그 감각을 오랜만에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