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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하나비 (Hana-bi, Fireworks, 1997)



형사 일을 하며 동료는 다리를 못 쓰게 되고, 백혈병인 아내와는 항상 떨어져있고, 자신의 후배 한 명은 죽게 된다.
형사 일을 그만두고도 주변 사람들을 챙기지만 한계를 느끼는 그.
사채를 끌어다 써서 이자 독촉에도 시달리는 그는 결국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보는 내내 울컥하게 하는 영화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절제가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아는 감독이다.
부부가 투 샷으로 잡힐 때마다 감당하기 힘들만큼 슬프다.

폭력적인 시퀀스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무엇보다도 드라마가 강한 영화이다.
서사도 단순한 편이지만, 기타노 다케시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야기를 개성있게 끌고 나간다.
배경으로 쓰인 공간들이 좋아서, 바다와 눈을 보여준 뒤에 다케시의 무표정이 비춰질 때는 정말 짠하다.

하나비의, '하나'는 삶과 사랑을, '비'는 폭력과 죽음을 상징한다.
제목이 역설적으로 쓰였는데, 불꽃놀이의 화려함처럼 영화에서 느껴지는 주인공의 행동 하나하나 굉장히 과감하고 강렬한데,
그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자 순간마다의 그의 감정은 불꽃놀이가 끝난 뒤의 풍경처럼 쓸쓸하다.
불꽃놀이의 여운은 그리 길지 않다.

영화가 풍성해질 수 있었던 이유에는 음악과 미술이 있다.
일단 음악이 히사이시 조이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연주곡도 너무 많은 이미지와 서사를 상상하게 할 만큼 풍성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
아무 풍경이나 찍어넣고 히사이시 조의 음악만 넣어도 한 편의 이야기가 된다.
이 영화의 메인 ost는 정말 환상적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효과적으로 음악을 활용한다.
사람들의 감정이 요동칠만한 장면에서는 아예 음악을 삽입하지 않는다.
감정이 사그라들 때쯤 음악이 시작된다.
결국 그 음악과 함께 참았던 감정까지 터져나오게 된다.

영화 속 또 하나의 매력은 미술이다.
실제로 기타노 다케시는 오토바이 사고로 죽음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그 당시 기타노 다케시는 영화 속에서 사고를 당한 뒤 그림을 그리는 인물처럼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기타노 다케시가 직접 그린 것들이라고 한다.
미술을 배워본 적이 없는 그이기 때문에 그의 그림이 더 묘한 느낌이 나는 것 같다.

가장 매혹적인 부분 중에 하나가 오프닝 시퀀스이다.
그림들과 히사이시 조의 음악으로 진행되는 시퀀스인데,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하쿠류는 볼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악역의 이미지를 가지고 태어난 배우 같다.
그가 선한 역할로 나오는 것이 상상이 잘 안 될만큼, 악역을 탁월하게 소화해낸다.

많이 절제한 영화이지만 영화 중간중간에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불안함들이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가슴 벅찬 순간이 아닐까 싶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중에서 가장 슬픈 영화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