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를 볼 때 기준이 늘 러닝타임이라는 사실은 서글프다.
서글프지만 현실이므로 가장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들을 고르다가, '풀잎들'을 봤다.
이유영은 짧게 등장했지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김민희의 딕션이 멋지게 바뀐 분기점이 된 작품을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매 작품마다 나오는 홍상수스러운 인물, 이번 작품에서는 정진영이다.
나중에는 아예 안재홍과 공민정처럼 비교적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다루면 어떨까.
홍상수가 좀 더 젊었을 때 젊은 연인을 다뤘던 것처럼.
여전히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이후의 홍상수에게 썩 호의적이지 못하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스틸컷 같은 이미지는 과하다.
이유영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김명수의 그림자를 보여주거나 하는 장면도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홍상수는 실체를 보여줄 때 흥미로우니까.
서영화와 김새벽이 어떤 언어를 뱉는 순간들이 좋다.
어떤 대사를 말해도 집중하게 된다.
둘은 톤이 다르지만, 결국 귀 기울이게 된다.
홍상수 영화의 의미를 굳이 찾아내서 해석하고 싶지 않다.
보이는 대로 볼 뿐이다.
최근작 중에는 여전히 '그 후'가 가장 괜찮았다.
김민희가 동생 커플과 함께 있으면서 언성을 높이고 동생에게 화 내는 장면에서 많이 웃었다.
속물적인 게 보고 싶었나보다.
'강변호텔'을 보면 또 생각이 바뀔까.
홍상수 영화마다 비슷한 글을 쓰는 건, 내 눈엔 그의 영화는 비슷하다.
내가 좋아하는 지점은 계속 비슷하기를, 내가 싫어하는 지점은 굳이 변화를 시도한답시고 보여주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한 명의 관객으로서 이런 마음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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