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아니어도 지금 전세계 대부분의 공간과 사람들은 외롭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리바이어던' 이후로 오랜만에 그의 작품을 봤다.
'리바이어던'은 분명 정적인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불어넣는 작품이었고, '러브리스'도 마찬가지였다.
한없이 건조하고 차갑다.
영화제목에 충실하다.
영화는 집요하게 육체에 집중한다.
각각 외도 중인 부부가 각자의 외도대상과 섹스를 하는 모습, 각자의 모습, 죽은 시체까지 영화에서 육체가 프레임을 채우는 장면이 많다.
그리고 장면의 온기가 없다.
몸의 열기를 가득안고 이뤄지는 섹스조차도 시체가 나온 장면과 비슷한 온도를 가지고 차갑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으니까.
사랑이 없어서 죽은 시체와 사랑 없는 섹스.
사랑이 있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은 섹스.
사랑은 휘발한다.
그리고 남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중간과 마지막에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뉴스가 나온다.
차에서 듣던 라디오에서는 종말에 대해 말하고,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우크라이나 소식이 들린다.
'리바이어던'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러시아 상황과 관련된 우화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난 이 작품을 아주 보편의 사랑에 대한 작품으로 보기로 했다.
제냐는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레스토랑에서 제냐와 안톤이 밥을 먹는동안, 그들 뒤에 앉은 젊은 여성들은 사랑과 셀카를 위해 건배하자고 한 뒤에 함께 셀카를 찍는다.
러시아의 날씨가 느껴지는 영화여서 차가운 게 아니라, 이 영화에는 온기가 담긴 장면이 거의 없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스산한 러시아의 풍경을 보여준다.
영화가 끝날 때쯤 아이실종 포스터가 붙은 러시아의 풍경은 여전히 눈이 덮여있고 차갑다.
아이가 실종되어서가 아니다.
사랑이 없어서다.
이 모든 건 사랑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우리도 사랑일까'를 연상시킨다.
외도했던 대상과 행복이 가능할까.
애초부터 사랑이란 가능한 것일까.
반복된다, 사랑을 쫓지만 사랑을 찾지 못하는 상황의 반복.
아이가 등장하는 시간은 짧다.
아이가 사랑 받지 못했다는 건 딱히 전사가 등장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이의 행방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아이의 몸에 사랑이 들어있지 않다는 건 알 수 있다.
사랑이 없으면 사라진다.
이건 은유가 아니다.
아이들은 사랑이 없으면 죽어가고 사라진다.
지원받지 못하면 죽는 나라들이 떠오른다.
'리바이어던'보다 좀 더 풍부하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품이다.
러시아에서 온 영화라 차가운 게 아니라, 감독의 연출이 차가웠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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