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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

모리스 (Maurice , 1987) '모리스'까지 보고 나니 내 취향이 생각보다 영국시대물 배경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봤던 '센스 앤 센서빌리티'가 워낙 좋았기도 했고. 사랑을 다룬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다보면 서로의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최근 들어서 자주 한다. 영화에는 워낙 극단적인 상황이나 갈등이 많이 나오기도 하니까. 영화 전반부의 휴 그랜트는 그의 수많은 명작 로맨틱코미디보다 더 매력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제임스 월비다. 제임스 월비는 주식일을 하는 장면부터 수염을 기르다가 후반부에서는 수염을 자르고, 휴 그랜트는 정계 입문을 앞두고부터 수염을 기른다. 둘에게 수염의 의미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모리스에게 수염은 솔직함이고, 클라이브에게 수염은 숨기기 위한 장.. 더보기
파고 (Fargo , 1996) 예전에 별 감흥 없이 본 영화였는데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봤을 때 좋은 작품들이 있다. 고등학생일 때는 허진호 감독의 멜로가 전혀 공감이 안 되어서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를 거의 10번 가까이 봤다. 물론 공감에는 실패했다. 영화 속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했던 건 영화를 보는 눈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경험이라는 걸, 훗날 몇 번의 연애 뒤에 허진호 감독의 멜로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파고'도 거의 10년 만에 다시 봤다. 걸작이라는 평가와 달리 내게는 그저 그런 스릴러였다. 다시 본 '파고'는 명백한 걸작으로 보였다. 영화를 보기 전에 한 심리검사에서 나의 공감점수가 낮게 나와서, 괜한 죄책감을 가지고 봐서 그런지 영화가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데어 윌 비 블러드'도 다시 봤을 때.. 더보기
바톤 핑크 (Barton Fink , 1991) '시리어스맨'이 떠올랐다.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칸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창작을 하는 이들이 모인 영화제일 텐데, 창작에 대해 이처럼 영리하게 다룬 작품이 몇이나 되겠는가. 후반부에 호텔에 불 나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존 터투로와 존 굿맨의 티키타카만으로도 가치 있는 작품이다. 악덕사장으로 나오는 마이클 러너, 엄청 급해보이는 감독 토니 샬호브, 알콜중독 소설가 존 마호니도 좋았지만 최고는 주디 데이비스였다. 짧은 분량임에도 극의 분위기를 바꾼다. 주디 데이비스가 당시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없었던 게 이해가 안 된다. 아니, '바톤 핑크'는 아카데미에 남우조연상 후보 하나만 올렸다. 게다가 남우조연상으로 오른 건 존 굿맨이 아니라 .. 더보기
밀러스 크로싱 (Miller's Crossing , 1990) 무시무시하다. 코엔 형제의 최고작을 뽑으라면 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골랐는데 앞으로는 '밀러스 크로싱'과 함께 고민하게 될 듯 하다. 코엔 형제 특유의 냉소적인 태도가 주인공 톰에게 딱 맞아서 그런지 몰라도 물 흐르듯 지나간다. 거의 모든 시퀀스가 매력적이고 긴장을 풀 틈도 안 준다. 톰이 줄타기 하듯 아슬아슬하게 행동할 때 관객의 마음은 두근두근거리는데, 정작 톰은 침착하다. 똑똑한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운이 좋은 인물이기도 하다. 코엔 형제는 개연성에 대해 물을 시간에 관객을 몰입시켜서 의문을 가질 틈을 안 주는 쪽을 택한다. 가브리엘 번을 비롯해서 배우들의 연기가 하나 같이 탁월하다. 특히 가브리엘 번과 존 터투로가 마주하는 밀러스크로싱에서의 장면은(포스터에도 나오는) 압도적이다. 존 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