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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어느 가족 (万引き家族 , Shoplifters , 2018)


내 기준에서 만점인 영화들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본 지 십분 정도 되었을 때 느낌이 오는 작품, 또 하나는 다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앓게 만드는 작품.

'어느 가족'은 전자로 시작해서 후자로 넘어갈 작품이다.

즉, 나의 마음에 들어온 작품.


'어느 가족' 속 캐릭터들이 주장하는 논리는 하나 같이 비약으로 보인다.

버려져서 주워왔다, 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훔치면 되지 않나.

러닝타임 내내 그들의 행동에 마음이 아픈 동시에 걱정이 된다.

그들이 한 행위 중에 질서에 어긋난 행위를 옹호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아무도 별 상관 안 하는 인물들에 다루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놀라울 뿐.


자꾸 울컥한 이유는 내 삶의 몇몇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도 떠올랐고, 살면서 날 도와주고 예뻐했던 모든 이들이 떠올랐다.

나의 성장은 수많은 이들의 따뜻함 덕분에 기적처럼 이뤄지는 거라는 걸 다시금 느낀다.


진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세상이 손가락질해서 내게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존재가 있으니까.


몇몇 장면은 내 삶에서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유리가 떡을 좋아하는 것 같자 챙겨주고, 두 아이가 도둑질을 하자 동생에겐 시키지 말라는 가게 아저씨, 함께 씻으며 몸에 있는 같은 흉터를 보는 것, 함께 바다에 놀러가서 가족들을 보며 혼자 소리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고맙다고 말하는 할머니 등.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릴리 프랭키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젠 그의 연기도 좋아하게 됐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비슷한 캐릭터인데, 굳이 변신에 대한 압박감 없이 이러한 캐릭터를 자주 연기해주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좋아하지 않을까.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키키 키린을 보면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자꾸 떠올랐다.

그녀가 주는 따뜻함 때문일까.


두 아역배우도 놀라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아역들에게 어떤 디렉팅을 하는 걸까.

마츠오카 마유는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의 캐릭터가 상상이 안 될 만큼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압도적인 건 안도 사쿠라다.

거의 모든 감정과 상황을 다 보여준다.

말투, 표정, 제스처로 이 모든 걸 설명하고, 아니 설명을 넘어 설득시키는 작업을 해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을 보면서 좋다는 생각들을 했지만 걸작을 만났다는 생각은 '어느 가족'이 처음이다.

보는 내내 부디 이 가족들이 행복하기를 기도했다.

지금 당장 깨질 것처럼 위태로운 이들.

이름조차 '유리'인 아이를 보며, 유리처럼 깨질까봐, 김기택 시인의 시 '유리' 속 표현처럼 너무 약해서 깨질까봐 두렵다.

가족이 되고 공통점을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게 상처일 때의 슬픔까지.


가족이라는 따뜻함, 그 따뜻함과 거리가 먼 소외된 이들이 만들어낸, 세상이 믿지 않는 따뜻한 가족.

영화이기에 가능한 일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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