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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 2017)


영화 제목처럼 미주리주의 에빙이라는 지역 외곽에 세 개의 광고판이 세워진다.

이 광고판에는 지역경찰이 방치하는 동안 자신의 딸이 죽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당연히 광고판의 타겟이 된 경찰들은 분개하고 회유 혹은 분노로 대응한다.


스릴러나 복수극이 될 줄 알았던 영화는 예상과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블랙코미디 성격을 가진데다가 사회비판의 성격도 강한 이 영화는 결국 장르상 드라마로 분류해야 할 것 같다.

복수에 대해 말하지만 결국 연대를 통해 마음을 회복하는 이야기니까.


처음에는 밀드레드에게 집중하지만 나중에는 딕슨에 집중하게 된다.

밀드레드는 시종일관 전진하고, 딕슨은 입체적으로 변화를 보여준다.

서장인 월러비의 편지도 이 영화의 큰 울림이 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모든 인물들이 선악으로 명확히 구분지을 수 없다는 거다.

월러비는 편지와 후원금 등 멋진 행동도 하지만, 그는 인종차별이나 고문을 하는 경찰이 사라지면 경찰이 얼마 안 남을 거라면 자신들의 악행을 합리화한다.

가장 합리적이어야할 공권력인 그가 밀드레드를 설득할 때는 자신이 암이라며 감정적인 호소를 한다.


밀드레드는 사건 당일 자신의 딸에게 했던 말이 저주 같았다고 생각하며 자책한다.

아들과 전남편은 밀드레드에게 스트레스를 표하기도 하는 등 밀드레드는 자신이 가족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물론 그런 고민 끝에 세 개의 광고판을 세우는 전진을 이룰 수 있었겠지만.


딕슨은 영화의 후반부를 책임진다.

한 인물이 영화 안에서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성숙해지는 걸 보는 경험은 멋진 일이다.

게다가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 성숙해진다는 게 많은 걸 뜻한다.

권위에서 멀어지고 자신을 낮출 때 자신의 진짜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이 영화의 메시지를 완성하는 데도 큰 힘이 된다.


촬영을 맡은 벤 데이비스는 '킥애스'나 '닥터 스트레인지', '가디어즈 오브 갤럭시',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같은 히어로물을 주로 촬영해온 감독인데 마틴 맥도나의 전작인 '세븐 싸이코패스'에 이어서 호흡을 맞췄다.

마틴 맥도나의 각본은 최소한의 설명으로 진행되는만큼 과감한 촬영이 필요했을 텐데 촬영의 리듬도 각본에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카터 버웰의 음악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코엔 형제와 주로 호흡을 맞춘 음악감독이자 마틴 맥도나의 작품마다 음악을 맡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주리주 에빙의 분위기와 인물들의 심리가 음악으로 표현되는 부분이 특히 많았다.


카터 버웰의 음악에다가 프란시스맥도먼드까지 나오니 자연스럽게 코엔형제가 떠올랐다.

프란시스맥도먼드는 '파고'와 '쓰리 빌보드' 두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두 영화는 꽤나 비슷한 면이 많다.

전자는 인물들이 극단적으로 분열되는 모습이 주를 이루고 후자는 인물들이 연대하는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녀에게도 의미가 깊을 듯 하다.


베니스영화제와 아카데미 모두 작품상은 '쓰리 빌보드'가 아닌 '셰이프 오브 워터'가 받았지만 완성도만 보면 '쓰리 빌보드'가 더 우세했다고 생각한다.

베니스에서는 '쓰리 빌보드'가 각본상을 받았는데, '겟아웃'도 충분히 좋은 각본을 가졌지만 '쓰리 빌보드'가 아카데미에서도 각본상을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수로 시작해서 연대를 향해 가고, 고민보다 행동이 먼저인 인물들이 움직이고, 절제와 과잉의 타이밍을 너무 잘 알고 딜레마를 끝없이 보여주는 영리한 각본 덕분에 이 영화는 애초에 명작이 될 운명이었다.


영화 선택할 때 참고하는 시상식 중 하나가 '미국 배우 조합상'이다. 

그해 작품 중 가장 캐스팅이 좋았던 작품에게 최고상인 캐스팅상이 주어지는데 올해에는 '쓰리 빌보드'가 받았다.

정말 배우 한 명 한 명이 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겟아웃',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이어 데이빗린치의 드라마 '트윈픽스3'까지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필모그래피는 독보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후반부에 병원에 입원한 샘록웰에게 빨대를 꽂아서 오렌지주스를 주는 장면은 이 영화 통틀어서도 멋진 연대의 장면 중 하나다.


밀드레드의 전남편의 애인이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라고 하지만 이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복수가 오히려 연대를 낳는다.

분노가 본질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갈등이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향해 가는 순작용의 예를 보여준다.


영화 속 인물들 모두 희망 앞에서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희망 때문에 결국 이들은 버텨나간다.

만연한 절망 안에서 희망고문이 될 지언정 그 정도 희망도 없이 이들은 버티기 힘들 것이다.

결국 이들이 연대하게 된 것도 그 작은 희망 덕분이다.


복수에 대해 말할 줄 알았는데 결국 연대라는 희망의 단어로 끝나는 영화다.

생각하고 움직이기보다 움직이면서 생각하는 내게 이 영화는 지침서가 되어준다.

일단 움직이면서 생각해보자.

생각한다고 해서 그리 많은 게 바뀌지는 않아도 움직이면 분명 무엇인가 바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