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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




너무 간단해서 간과하는 것이 답인 경우가 많다.
통찰의 경우.
굉장히 거창해 보이지만 자신의 욕망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과정이 통찰의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대다수의 우디 알렌 영화가 바로 통찰의 과정이다.

시공간을 오가는 영화는 넘쳐난다.
우디알렌은 SF장르도 아니고 개연성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영화를 이끌어간다.
하긴 우디알렌 앞에서 개연성이라는 단어는 어색하다.
개연성을 생각할 틈도 없이 우디알렌이 펼쳐놓은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된다.

예술을 사랑하는, 조금이라도 흠모하는 이라면 이 영화와 금방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치 토이스토리 시리즈가 처음 나왔을 때 꼬마들이 방에 불을 그고 장난감들이 움직이나 몰래 지켜본 것처럼,
이 영화를 보고나면 당장이라도 파리로 달려가야만 할 것 같다.

한 소설가가 파리에 가게 되고, 자정이 되면 과거로 떠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그 과거는 예술가들이라면 흠모할 수 밖에 없는 파리의 20년대이다.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피카소 등 꿈만 같은 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을 직접 만나게 된다고 해서 얼마나 거창한 질문을 하겠는가.
주인공은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조언을 얻고 한 단계 성장한다.
이들과의 만남이 주인공의 망상인지 타임슬립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거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하게 된다.

파리라는 낯선 곳에서 자신의 진짜 욕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이야 과거의 어느 시대를 황금기라고 하지만, 정작 그 시대를 사는 이들은 자신의 시대를 황금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황금기를 완성하는 것은 현 시대가 아니라 후시대의 평가가 더해졌을 때이다.
그 시대에 사는 이들은 황금기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살기보다, 그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뛰어다닐 뿐이다.
그 시대에 자기 분야에 몰두하는 많은 개인들이 있고 그 개인들의 교류가 황금기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고.

사실 이 영화에 대한 메시지보다도 이 영화 자체가 너무 사랑스럽다.
파리에 대해서 이 영화보다 좋은 관광가이드이자 홍보영상이 없을 것이다.
이 영화 한 편 덕에 우리는 파리의 역사를 알게 되고, 파리의 예쁜 배경들을 보게 된다.
그야말로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찬가에 가까운 영화이다.

주인공은 철저하게 우디알렌 자신이다.
특히 오웬 윌슨의 멍 때리는 모습은 신경쇠약 직전의 우디알렌, 그 자체이다.
우디알렌의 욕망이 좋다.
적어도 그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자기 욕망에 솔직하기에 그의 영화가 지금까지 사랑받는 것이고.
우디알렌처럼 지적인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파리의 황금기를 장식한 예술가들을 시나리오에 쓰면서 얼마나 신나했을까?

파리의 풍경만큼이나 영화 속 여배우들도 빛이 난다.
난 사람들에게 영화를 추천할 때 그 시대의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배우들을 보고 싶으면 우디알렌의 영화를 추천한다.
연기 디렉팅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같이 매력적인 인물들.
레이첼 맥아담스는 은근히 얄미운 캐릭터가 참 잘 어울리고, 마리옹 꼬띠아르는 무슨 역할을 해도 참 신비로운 것 같다.
칼라 브루니는 등장할 때마다 사르코지의 부인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게 된다.

짧게 등장하지만 레아 세이두는 정말 파리, 그 자체이다.
우디알렌이 부르는 파리의 찬가 속에서 툭 튀어나온, 파리에 대한 좋은 환상을 형상화한 듯한 낭만적인 캐릭터이다.

20년대 파리를 빛낸 예술가들이 툭툭 등장하며 자기소개할 때마다 엄청 웃기다.
특히 살바도르 달리로 등장하는 애드리언 브로디는 짧게 등장하지만 대사톤부터 시작해서 어찌나 웃기던지.
분량을 떠나서 우디알렌의 영화를 거부할 수 있는 배우는 세상에 몇 없을 것 같다.
이렇게 하나같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라니.

우리들은 이 영화를 보고 행복해지고, 파리는 이 영화로 인해서 더 행복한 도시가 되었다.
물론 우디알렌이 펼쳐놓은 풍경이기에 아름다워보인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참 막연하게 파리에 대해 품고 있는 좋은 환상이 더 커짐을 느낀다.

우디알렌은 굳이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시대가 후대에 예술의 황금기로 기록된다면 우디알렌이 황금기의 큰 축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디알렌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 이 시대는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