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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로우 (Grave , Raw , 2017)


2017년의 크리스마스에 '로우'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바로 블로그에 감상을 남기는데 지금도 몸에 기운이 없고 손이 떨린다.

이렇게까지 긴장하고 영화를 본 경험은 오랜만이다.

'마터스'만큼 힘들었다.

잘 만든 영화지만 두 번 보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줄거리를 아예 모르고 보면 제일 좋은 영화인데, 해외에서는 보다가 실신할 사람도 있을 만큼 여러모로 충격적인 영화다.

서사를 아주 거칠게 요약해보자면 채식주의자로 살았던 소녀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식인을 탐하는 본인의 욕망을 깨달아가는 내용이다.


어머니의 엄격한 훈육과 함께 채식주의자로 살다가, 대학에 입학해서 거친 방식의 신입생환영회에서 토끼콩팥을 생으로 먹으면서 이 모든 일은 시작된다.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자신의 몸이 채식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부모품에서 통제되던 욕망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학교에는 자신의 언니가 이미 다르고 있다.

언니는 동생의 학교적응을 자신의 방식으로 도와주려고 하는데, 결국 동생이 자신과 비슷할 길을 가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은 이제 함께 연대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가진 욕망이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욕망이면 어떻게 해야할까.

영화에서는 '식인'으로 설정되어있지만 다른 욕망으로 치환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을 부정하거나 사회에서 이탈하는 것 이외에 어떤 방법이 있을까.

여러모로 윤리적인 질문을 던져보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까지 보고나니 2017년의 키워드는 '오직 두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 깊었던 한국영화인 '꿈의 제인'과 '연애담'부터 오늘 본 '로우", 김애란, 김영하, 박민정, 조해진 등의 소설에 등장한 인물들은 오직 둘이기에 소통가능하고 견딜 수 있는 장면들을 그려낸다.


소재로 보면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떠오르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연대하는 대목에 있어서는 크리스티안문주 감독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 떠올랐다.

서로가 아닌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피를 많이 보니 어지럽다.

시간이 지나서 '로우'가 피로 기억될지 연대에 대한 이야기로 기억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