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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꿈의 제인 (Jane , 2016)


'꿈의 제인'을 보고나서 구교환이 연출하거나 출연하는 단편들을 찾아보았다.

쓰레기 혹은 버리는 이미지가 계속해서 등장했다.


'4학년 보경이'에서는 여자친구를 위해 소파, 선풍기를 주워온다.

'연애다큐'에서는 여자친구가 보내준 깨뜨린 도자기를 본드로 붙였다가 다시 깨며 버린다.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에서 잃어버렸다가 찾은 그의 DVD가 담긴 백 안에는 쓰레기가 가득하다.

'플라이투더스카이'에서 이태리에서 돌아온 성환은 자신을 실패한 쓰레기로 취급한다.

그가 출연하지 않고 연출만한 '걸스온탑'에서는 주인공이 거대한 선인장을 버린다.


'꿈의 제인'속 제인도 줍는다.

미러볼을 들고 오고, 해변에서 비치볼을 줍는다.

쓰레기를 줍는 제인을 보며 소현은 느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쓰레기 같은 신세를 이 사람이라면 의미부여하고 보듬어줄지도 모른다고.


제인은 마지막에 말한다.

주변 사람들은 자신에게 말했다고, 너는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는 거라 결국 사랑받지 못할거라고.

제인은 불행에 대해 말하고, 뉴월드에 입성한 이들에게 'unhappy'라는 도장을 찍어준다.

사실 누구에게나 있는 불행이라는 바코드를 각인해준다.

불행의 질량은 비슷할텐데 그것을 인정하느냐 아니냐는 많은 것을 바뀌게 만든다.


영화의 전반부까지는 평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후반부부터 이 영화의 진가가 드러난다.

후반부는 보는 내내 '한공주'를 볼 때만큼 마음이 답답했다.

두 번 보기 힘들다고 느낄 만큼 보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기도 할테니.

가출한 이들의 팸 문화는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영화가 아니었다면 들여다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배우들이 빛난다. 

구교환 때문에 봤지만 이지민, 이주영에 굉장히 놀랐고, 특히 후반부 팸의 아빠인 병욱 이석형과 대포 역의 박강섭의 연기도 좋았다.

캐릭터들이 이렇게 균일하게 다 살아있는 느낌의 영화도 오랜만이다.


누군가와 어울리는 게 힘들고, 보여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것에 힘들어 하는 소현을 보며, 그런 소현의 고민은 누구에게나 있는 고민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이 힘들어서 꿈을 현실처럼 믿고 살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현실이 전진되지 않을 것을 알지만, 어차피 힘든 현실에서 꿈이 아니면 또 무엇으로 버티겠는가.

불행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은 쿨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제인보다 지수가 자꾸 떠오른다.

내겐 꿈보다 현실이 더 절절하기 때문이다.

상상 속 구원자가 아니라 진짜 내게 닿아있던 구원자의 표정과 몸짓이 내겐 더 중요하니까.

내가 그려낼 세계보다 내가 느꼈더 온기가 더 중요하니까.


영화 속 모든 이들이 아파서, 영화를 봤다는 느낌보다 앓았다는 느낌이 더 크다.

가장 마음 아프게 읽었던 소설인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 떠올랐다.

제인보다 제인의 품을 꿈꿀 수 밖에 없는 모든 이들을 기억할 것이다.

미러볼의 불이 꺼지면 다시 폭력과 외로움에 싸늘하게 노출될 그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