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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더 로드 (Dead End, 2003)



가끔 좋다는 공포영화 추천 받을 때 빼고는 공포영화를 잘 안 본다.
장르적으로 너무 뻔하게 풀어낸 영화들이 워낙 많고, 신선한 영화들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 로드'를 추천한다는 말에, 코맥 맥카시의 그 로드인가 싶었는데, 아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친척집을 향해 차를 타고 가던 한 가족이 숲에서 길을 잃은 한 여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 여자를 태워준 뒤에 기묘한 일들이 벌어진다.

저예산 영화의 가장 큰 필수덕목이겠지만 공간 활용을 참 잘한다.
협소한 공간임에도 플래시백 사용도 안 하고, 시각적인 공포보다는 상황을 통해서 공포를 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을 공동연출한 두 사람 모두 데이빗 린치의 광팬이라는데 데이빗 린치의 흔적이 굉장히 많이 느껴진다.
특히 내내 나오는 도로의 이미지는 '로스트 하이웨이'를 연상시키고, 사고 당한 여자가 자기 뇌를 만져보는 부분은 '광란의 사랑'을 연상시킨다.
'광란의 사랑'에서 주인공 커플이 고속도로에서 차사고 당한 사람들을 만나는 장면을 제일 좋아하는데, 그 장면에서의 기괴함이 이 영화 곳곳에서 느껴진다.

데이빗 린치의 영화 '트윈픽스'에 나오는 레이 와이즈를 염두하고 만든 역할은 레이 와이즈가 직접 연기하고, 린 샤예와 알렉산드라 홀든의 연기도 좋았다.
특히 정신 나가 있는 린 샤예의 연기는 '샤이닝'의 셜리듀발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마르콧 로드라고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설계된 나선형 도로가 있는데, 교통사고도 많이 나고 실종 사건도 많다고 한다.
돌고 돌아도 계속 처음 지점으로 돌아오는 공간 설정을 비롯해서, 여자가 정신 나간 채 총을 들고서 남편, 딸과 대치한 상황에서의 대화는 귀신 몇 백이 나온 것보다도 효과적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의도한 것인지 내가 본 DVD가 이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무서운 장면에서의 음악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는데 덕분에 사운드만으로도 깜짝깜짝 놀란다.

엔딩이 참 모호하게 끝나는데, 사실 이 영화는 개연성을 따질 틈도 없이 공포에 빠져들게 하는 그 속도감과 템포가 가장 큰 장점인 영화이다.
메시지도 결코 가볍지 않고 더 많은 예산을 가진 공포영화들도 쉽게 놓치고 가는 부분들을 잘 잡아낸 공포영화가 아닐까 싶다.